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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review

거짓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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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장선우 1999
naver

-언젠지 모르겠는데 여튼 무척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

저는 앞서, (거짓말에서) 성기노출의 시도와 여성에 의한 새디즘이 가부장체제에 전복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고, 이것이 거짓말 상영금지조치의 원인이라고 썼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소리를 써놓긴 했지만,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비난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듣기 싫은 까닭에, 구질구질한 소리 몇자 적겠습니다.

영화는, 다른 대중매체와 같이, 현실질서의 재현이고 강화의 수단으로 쓰입니다. (여기에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비롯하여,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성폭력의 과장된 재현인 저 숱한 포르노까지 포함합니다.) 그런까닭에 소위 B급영화나 인디영화라 이름붙여진 영화들의 과격하고 이단적인 세계관 같은 것들을, 자본의 논리에 충실히 복종하는 주류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지요. 예컨대, 존 카펜터가 최근작 "슬레이어"같은 영화에서, 카톨릭의 최고위 성직자가 벰파이어와 결탁한다는 류의 설정은, 미치지않는 이상 카메론 같은 감독은 절대 안하지요.

기존 권력질서나 헤게모니 유지를 공고히하는 영화적 소재나 접근방식은, 야한 영화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런 것들은 여러 종류의 "금기"의 형태로 영화제작자들에게 강제되는데, 예컨대 남성의 성기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 허용하지만( 닐 조단의 "크라잉 게임"이나 김창동의 "박하사탕") 여성의 성기는 절대 노출되면 안된다거나 미성년자의 섹스는 안된다거나 새디즘이나 수간등의 묘사는 안된다거나, 요즘이야 안그렇지만 가정을 등진 유부녀들이 잘먹고 잘사는 걸로 끝나선 안된다거나, 여성의 벗은 가슴은 정면에서 촬영하면 안된다거나... 수도 없죠. 이와 같은 금기는 물론, 현존질서의 유지와 확대,강화의 목적을 위해 역할하는 것으로, 때문에 켄 러셀같은 감독은 악마가 수녀를 강간한다든지 하는 과격한 방식으로, 엿먹으라고 손가락을 내밀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류의 금기는 왜 금기여야 할까요? ( 졸라 잘난척한다고 생각지 말아주십쇼. 기냥 제 의견일 뿐입니다.) 오늘은 2000년 2월 16일이지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근대적 성관념의 잔재입니다. 그것은 대충 생식주의, 연령주의, 이성애주의로 요약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성행위들은 죄악시되고, 시대에 따라서는 사형되기도 했으며(영국에서는 1800년대중반까지 동성애행위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정신병자나 성정체성 확립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병리화되기도 했고, 그와 더불어 사회적 권력관계로부터의 배제는 물론, 심지어 감금,구속도 불사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핵가족"이 자본주의 구성의 최소단위로서 그 의미를 재정립함과 더불어, 즐거운 나의 집, 어쩌구 하는 가족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사회질서의 근간 같은 걸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가부장제의 확립과 강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남자, 여자를 갈라놓은 후, 남자에 의한 지배를, 법률적 종교적 생물학적으로 정당화,자연화하였으며 이에대해 개기는 존재에 대해선 단죄의 칼을 뽑았던 것이지요. 예컨대, 중세 마녀사냥이 가부장적 지배에서 벗어나있는 노처녀, 과부, 이혼녀 등을 그 대상으로 했듯이, 오늘날에는 이혼녀인 주제에 위자료도 안받게다는 수상한 여자 "백지연"을 스캔들의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식이지요.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섹스 본연의 목적을 "생식"으로 한정짓고자 하는 "생식주의"는, 생식능력이 없는 청소년이나 노인네들의 성생활(?)을 변태적인 것, 희극적인 것, 천인공로할 짓 등으로 매도해왔고( 성욕을 갖고 있는 노인들이라니, 얼마나 엽기적입니까?), 영화에서의 자위장면이란 항상 그다지도 불결하게 묘사되며( 남녀간의 성관계와 솔로의 자위중 어느게 더욱 일상적입니까? ), 게이는 에이즈의 주범으로 과학적으로 낙인찍혔고, ... 지배자로서의 남성은 성에 있어서도 주체의 지위에 놓여있어 여성을 성적대상물로 규정하고 통제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여성의 성욕이란 본성상 악에 물들기 쉽고 파멸적이라, 남자의 적절한 통제아래에 놓여있지 않는다면 위험천만하다는 인식, 혹은 사유재산의 상속자로서의 장자의 유전적 정통성(?)을 확보하고자하는 의지는, 아랍권이나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음핵을 제거하는 할례로 지금도 자행되고 있고, 영화에서라면 팜므 파탈로 대변되는 수많은 섹시한 악녀들을 양산해냈지요.(야한여자=위험한여자)

이제 성기노출과 새디즘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영화에서 여자의 성기는 절대로 가려져야 할 어떤 것입니다. 그 안의 정체불명의 어떤 막은 순결의 상징이고 결혼식날 까지 봉해져야할 어떤 것으로, "순결 이데올로기"야말로 가부장체제에서 여성지배의 핵심인 것입니다. 때문에 영화에선 하다못해 여자애기 고추조차 나오지 않으며, 여성의 성기노출은 한 영화가 뽀르노냐 아니냐(즉 위험한 영화냐 아니냐)의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되어왔습니다. 성기를 내놓아도 되는 여자는 창녀뿐이고 그것도 음침한 곳에서 손님만 봐야하는 것이지요. 요약하면, 영화에서 여자의 성기를 노출시키는 것은, 여성에게 강제되는 성적이데올로기의 가장 첨예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으로, 그와 같은 시도가 단지 성욕을 자극하고자 하는 수단이 아니라면, 가장 전복적인 형태의 시위가 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브라를 벗어던지자며 상반신을 노출하고 행진하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의도같은 겁니다. (당신이 성기노출이라는 방식을 불쾌하게 여기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기노출이 단지 에로틱함 만을 조장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겁니다.) 영화에서라면 잡아먹을 듯 위협적으로 클로즈업되는 "감각의제국"같은 경우가 있겠습니다.

다음은 새디즘입니다. 보통 새디즘은 변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 도대체 어떤 행위까지가 변태고, 어떤 행동이 변태인지 아닌지는 누가 정했냐, 는 긴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적 쾌락의 유도책으로서의 사도-매저키즘은 상호간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겁니다. 분위기 만들려고 포도주 마시는거나 마찬가지로, 보다 강한 만족을 위한, 좀 별스런 시도일 뿐입니다. 이게 왜 변태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요? 정녕 비난받아야 할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호간의 동의에 의한 새디즘은 변태로 몰아부쳐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저 숱한 에로영화의 폭력적인 강간씬이나, 특히 첨엔 강간으로 시작했으나 끝낸 화간으로 끝난다는 식의 더욱 역겨운 설정등은 왜 가만 보아넘기냐는 겁니다. 이것은, 남성의 성욕은 동물적이고 폭발적이라 적당한(?) 여건만 주어지면 아무 여자한테나 덤벼드는 거라는, 가장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상식에 기초한 것으로, 우리가 강간영화에 익숙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자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을 묘사하는 영화도 있었 으나 그건 단지 성적주체인 남성들에게 색다른 쾌감을 느끼게 하기위한 시도일 뿐입니다. 제가 거짓말에서의 구타씬이 역시 전복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비생식적 행위인 새디즘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는 앞서말한 "생식주의"에 대한 개김으로 읽힐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새디즘이 여성에 의해 자행되는 상황이라면, 그건 가부장제적 지배에 대한 가장 정공법적인 개김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거짓말에서, 주인공 남자가 여자한테 맞으면서 옛날 아버지한테 맞는걸 회상하며, 자신은 맞을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유치하도록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공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의 억압의 기억, 그런 그를 때리며 제의화된 권력을 행사하는 20살이상 작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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