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21 11:30
... 그렇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조르바는 분명 매력적인 인간입니다. 행동없이 머릿속에서 단어만 굴리는 지식인들을 비웃고, 국가라는 미명 아래 악행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애국심을 비웃고, 인생이 선사하는 쾌락과 희열의 순간 앞에서 머뭇거리는 알량한 윤리관을 비웃는, 이 정열적인 남자의 야수적인 매력을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조르바에 여성관이 지독히도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애교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조르바가 회한섞인 한숨으로 고백하는 과거 그의 악행의 기록들까지 조르바라는 위대한 인간이 완성되기 위한 한 단계나 수순이었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카잔차키스 자신이기도 한 극중 화자는 인간 조르바의 매력에 취해 그의 죄많은 개인사까지도 '행동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하는지 모르겠으나, 제겐 그런 화자의 태도는 문약한 자신에 대해 컴플렉스를 갖고 있던 지식인의 뒤틀린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조르바는 위대하고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지하철 안에서 저도모르게 킥킥대며 웃게 만들만큼 솔직하고 신랄했으며, 그가 하는 어떤 행동들과 용기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행동으로 가득찬 조르바의 삶의 역정은 평범한 사람의 삶의 스케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소설 속의 영웅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의 삶의 어떤 에피소드들은 일반적인 윤리관으로는 용서하기 힘든 오점이 있고, 저 같은 소심한 남자는 그것때문에 조르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하기를 거부하고 맙니다.
Alexis Zorbas 희랍인 조르바
Director:Mihalis Kakogiannis
naver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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