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 Luxemburg 로자 룩셈부르크 ★★★★
Directed by Margarethe von Trotta
imdb
정치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전에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지만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일차대전을 전후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혁명가의 일생은 분명 드라마틱할테지만, 제겐 '그래서 뭐 어쩌라구?' 시큰둥할 따름이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병폐를 서서히 드러내며 전쟁의 광기에 빠져드는 역사적 혼돈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며 신랄하고 선동적인 연설을 해대던 혁명가의 삶같은 건, 한 세기 후 극동의 작은 나라에 사는 저에게는 어떤 흥미도 일으키지 않는, 유럽 역사의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과 비젼에는 오늘 우리가 이 영화를 보아야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주는 현재성이 있습니다. 역사적 경제적 원인은 다르겠지만, 지금도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국경을 근거로한 호전적인 쇼비니즘이 국제적인 연대를 압도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그 당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략 혹은 일부 집단의 이해만을 반영하여 민중 다수의 의사에 반(反)하는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의 행동은, 지난 3월 초 국회에서의 쿠데타와 절묘하게 매치되구요. 한 세기가 흘러도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재미도 충분합니다. 냉철한 이성과 꺾일 줄 모르는 의지, 그리고 민중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채워진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전달된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 역을 맡은 바바라 주코바의 뛰어난 연기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연단에 올라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그녀의 모습은 실제 로자 룩셈부르크의 연설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호소력과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건조하지만 힘있는 연출도 이 영화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합니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가 암살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만큼 단호하게 처리되었습니다.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그 갑작스런 종결은, 주인공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한 뛰어난 혁명가의 비젼이 실현되지 못한 채 꺾이고 말았다는 '분노'를 일으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제게 가장 흥미로왔던 건 그녀의 연애심리였어요. 냉철한 이성과 유물론적 역사관으로 무장한 이 사회주의 혁명가는, 하지만 애인이 저지른 부정(不貞) 앞에서는 이성이고 뭐고 그냥 무너져 버립니다. 오입질 한 번이 뭐 그리 대수라고...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가졌지만 그녀가 그런 고루한 섹스관에서 자유롭지도 못했던 건, 시대적 한계였을까요, 아니면 그녀 자신의 한계였을까요?
무척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이번 여성영화제 최고의 수확이었어요. (2004·04·06 01:38 )
아래는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감독 : 마가레테 폰 트로타
독일/ 1986/ 122분/ 35mm/ 드라마
1896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민주정부 설립과 폴란드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재능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게된다. 그러나 레오 요기헤스(다니엘 올브리쉬스키 분)와 긴밀히 협동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활동은 개인적인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오게 된다. 국제적 긴장감이 감돌자 로자는 전쟁과 군국주의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게 되고 그녀의 사회주의자 동지들은 로자를 급진적 인사로 치부하게 된다.
내 기억으로 1968년은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긴장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인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개혁 또는 혁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글 뒤에 숨어있는 여성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며, 로자의 옥중 서신을 통해 그녀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감성 또한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2,500통의 서한을 썼고, 이 편지들은 영화를 만드는데 최고의 자료가 되었다. 서한들은 그녀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따뜻한 여인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역동적이고 전투심이 넘쳤는지도 보여준다.
로자는 정말 완벽할만큼 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간보다 자연에게 더욱 가까운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문학과 음악, 미술과 식물학(사실 식물학에 대해선 전문가였다), 지질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 촘촘하고 깔끔한 글씨로 공책 가득 메모를 하곤했다. 그녀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을 가지고 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 특유의 발랄함과 인내심으로 친구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해 모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연구해도 아깝지 않을 여성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내 영화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역사물을 만들거나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영화로 인해 로자 룩셈부르크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감독의 변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은...
아녜스 바르다, 타흐미네 밀라니, 레아 풀에 이어서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가 마련한 감독특별전의 주인공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 마가레테 폰 트로타다. 영화배우로서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로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은 폴커 슐렌도르프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공동연출함으로써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단독 연출 데뷔작인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 번째 각성>은 이미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어린이보육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갱이 되는 여성주인공과 그녀를 대피시켜주는 그녀의 친구, 그리고 목격자 사이의 여성적 연대감을 표현한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 번째 각성>에서도 보여주었듯이, 폰 트로타 감독은 여성주의적 이슈를 직접적이고도 유연한 방식으로 작품에 끌어들이고 언급하고 사유하며 영화적 해결책을 모색한 페미니스트 감독이다. <독일 자매>의 언니 율리아네는 히틀러 시대의 민족적 공포 정치를 지탱시켜준 출산 정책을 고발하는 여성운동가이며, <완전히 미친>의 올가는 가부장적 상징질서의 완고함 속에서 망각에 묻혀버린 여성작가를 발굴하여 여성주의 언어와 표현의 계보학을 세우려는 페미니스트 문학가다.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에서 이러한 여성주의 이슈와 매개된 설정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여성 인물들 그리고 서사와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며 서브텍스트를 구성한다. 특히 고전적인 그러나 절대로 관습적이지 않은, 관객과 소통 가능한 영화적 문법 속에 페미니즘적 이슈와 전망을 드러냈다는 데에 그녀의 소중함이 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자매애, 모녀관계, 그리고 동성애와 관련된 여성들간의 관계에 천착해왔으며, '폰 트로타적 여성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고안될 만큼 영화 속에서 일관되게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구현해내었다.
그녀들은 무언가를 강하게 욕망하며 또한 서로를 욕망하고 때로는 폭력까지도 수단으로 하여 가부장제와 억압적 사회 체제에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여성들이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불꽃같은 여성 혁명가들을 그려낸 <독일 자매>와 <로자 룩셈부르크>는 테러리즘과 중층적인 모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여성들에게 힘을 부여함과 동시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미완의 혁명의 꿈'의 소리를 듣게 할 것이다. 이성애적 관계에 놓여있을 때조차도 더 강한 정도로 서로를 마주하고 응시하며 욕망하는 '폰 트로타적 여성 주인공들'은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들을 가로질러 서로를 호명하면서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어낸다.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에서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독일의 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독일 자매>, 민족 분단을 한 연인의 로맨스로 절단해서 바라 본 <약속>, 독일 혁명기를 다룬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여성의 계보학으로 재구성한 <로젠슈트라세>에 이르기까지,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들은 독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드러냄은 물론 특정한 역사적 맥락들과 여성의 경험과 인식이 맞물리는 서사적 공간을 날카로운 지성과 섬세하고도 때로는 비장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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