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view

오래전 낙서

Ozu 2013. 7. 22. 15:36

 

세기말 ★★★
송능한 1999
naver

이게 비됴로 출시되었다는 말을 한참전에 들었는데, 도대체 손이 가질 않는거다. 기냥 웃기대서 본 <넘버3>가 열라 장난아니었기땜에, 송능한의 다음영화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근데, 막상 영화가 개봉되고 나니, 소위 평론가들 하는 소리가, 영 아니랜다. 그래서 안봤다. 그러다가, 정성일이 키노에, 뭐래더라, 여튼, 송능한은 멋진놈, 이라는 식의 얘길 하길래, 어디까지나 정성일의 말이니까... 하면서 봤더랬다. 그랬더니... 재미만 있던데, 걔들은 왜 지랄했느냔 말이다. 시나리오 작가에대한 첫 에피소드의 경우, 평론가들 얘기는, 뭐 그런 영화인의 고뇌 어쩌구하는 진부한 소재로 관객에게 즐거움 어쩌구가 아니라 뭔가 절라 잘난척하고 뭔가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트뤼포의 <누벨바그>에 대한 어떤 평론가의 평처럼, 예술의 이름을 빌은 자위행위라는 식의 얘기다. 송능한은 평론가들이란 놈들이 이런 얘길할 것이란걸 미리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영화에서 별점매기기, 오만 허잡한 애들의 영화평 쓰기 등, 평론가들의 유치뽕 짓거리에 대해 대놓고 씹어대는 선경지명같은걸 보이고 있는데, 나로서는 열라 신나는 장면이 아닐수 없었다. 누벨바그를 주도한 평론가들의 정확한 자기인식대로, 평론가는 아무리 잘나봐야 영화를 직접 찍어대는 감독에 비할바가 못된다. 정성일은 이걸 잘 알고있고 그래서 열라 잘난척해면서 세상엔 영화밖에 없는거 처럼 얘길 해도 열라 멋지고 그런가보다 하지않을수 없다. 영화를 정녕 사랑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얼마나 쿨하게 씹느냐, 혹은 어떤 영화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를 얼마나 잘 예측하여 영화광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보신주의같은게 평론가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인거다.( 4월의 이야기, 열라 매력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별점 4개씩 받을 영화는 아니잖은가?) 제길, 영화로 열라 잘난척하면서 뭔가 가르칠려고 하는 놈들은, 감독이 아니라 평론가들이란 말이다. 사실, 영화찍는 행위에 대한 영화는 열라 많다. 최근엔 색정남녀도 있었고, 8과 1/2 어쩌구, 이마베프... 열라 많았다. 요컨대, <세기말>에 대해 평론가들이 아니꼬왔던건 송능한이 이번엔 정색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뭔가 시인인가 하는 예술가들의 예술적 오만에 대한 경멸이 열라 망가지는 장르인 코미디의 탈을 쓰면 재밌고 괜찮은 영화인데, 그걸 정색을 하고 말하면 역겹다는 건가? 지랄 옆차기하는 소리다. 송능한의 사회비판은 <넘버3>에서 보다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며 열라 전투적으로 변했고, 어줍잖게 시니컬한척 하는 <넘버3>보다 훨 솔직하다. 정통(?)코미디인 <넘버3>보다 안웃긴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한마디로, 평론가란 놈들, 몇몇을 제외하곤 열라 재수없고, 다신 별점등에 혹해서 영화를 미리 평가하지 않아야겠다. ...

이재은인가 이번에도 열라 벗어제끼는데 뭐하는 짓인가 싶다. 연기력이 좋다, 어쩌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루한 표정짓다가 기냥 한번씩 벗어주는 애일뿐이다. 김갑수는 어쩐지 오버의 연속같은 느낌이고... 하지만, 차승헌은 의외로 열라 속물적인 강사 역을 끝장으로 해냈다. 저게 차승헌인가, 싶을 정도였다. 영화를 다보고 나니, 울라나 절라 좋은 나라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개가 되든 뭐가 되든, 돈 열라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는 것이었다.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돈만 있음 중삐리 두명 차고 여관을 전전할수있는 나라아닌가? (2000/05/09)

 


 

Fail Safe 페일 세이프 ★★★☆
Stephen Frear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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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계적인 결함으로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가 모스크바를 향했다. 막을 도리가 없다. 대통령은 러시아 수상에게 전화를 걸고... 음...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이다 싶은게, 예전에 EBS같은데서 한 것 같기도 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TV용 영화가 비됴로 출시되었다. 그러고 보니 닥터 스트레인지도 이런 내용이었던거 같은데... 조지 클루니랑 하비 케이틀에다 스티븐 프리어즈라서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봤는데, 굉장히 횡재한 기분이다. 군인이란건... 열라 멋진 족속들이 아닐수없다.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라니까 떨어뜨릴 뿐이다. 뭐 그뿐이다. 열라 편리한 삶의 방식이 아닐수 없다. 시키면 한다...

냉전때 핵전쟁의 공포는 현재에도 유효한 많은 시사점들을 준다. 과학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한다는 식의 논리는 자기모순이 아닐까? 국가적 차원의 음모에 매스미디어는 어떻게 가담하는가? 미국이 바라는 바는 세계평화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무기판매 시장을 가능케할 국지전인가?... 뭐 날도 더운데, 저 시대의 그 많은 핵무기가 보다 업그레이드 되어설라무네 지금 이순간도 누구인지 몰겠는 사람에 의해 관리되며 언제나 발사가능한 상태로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좀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폭탄이 떨어진 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뭐 어쨌든 죽을 사람들이니까), 경제활동을 계속 할 수있도록 그 도시에 있는 서류들을 챙기는 것이라는, 한 고명한 과학자(?) 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그러니까 결국 냉전이란 건 자본주의 경제의 확대와 그를 통한 이익창출의 이데올로기를 한 축으로 삼았다는 식인데... 뭐 이쯤해서 열라 재수없게 구는 과학자 같은게 하나 나올법도 한데 다행이랄까, 각각의 사람들의 윤리적 고뇌 같은 것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조지 클루니까 멋있단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아들놈과 통화하면서의 그 궹한 눈빛은 다시 한번 뻑가게 만든다...

하하... 어쨌든 스티븐 프리어즈는 멋진 놈이었따!!! 그의 최근작 하이로 컨트리도 우디 해럴슨의 멋진 연기와 패트리샤 아케트의 퇴폐적인 요염함으로 즐거움을 주었떤 영화이지만, 역시 그의 최고작은 그리프터스가 아닐까, 자기 아들일지도 모르는 놈의 시체 옆에서 돈을 세던(?) 안젤리카 휴스턴의 연기는 아담스 패밀리에서 보다 훨 엽기적이었던 기억이... 그러고보니 그 영화... 아네트 베닝이 옷을 열라 벗어제껴서 저여자 왜 저러나 싶었던... 음... -- (2000/07/29)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류승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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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섭 류승완의 힘과 재능이 폭발한다 ★★★★
김영진 마침내 깡패영화 키드가 나타났다. 좋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
박평식 폭력이 폭력을 부순다. 창의력을 지닌 모방은 예술 ★★★☆
심영섭 <초록물고기>보다 리얼하고 <나쁜영화>보다 뭉클하다 ★★★★
유지나 진정한 영화재능이란 이런 것 ★★★★

이따위 호평은 또 근래에 드물었다, 한국영화중에선. 거기다, 블로우 업이라는 유래없던 과정을 거치며 전국개봉에 들어간 이 영화에 대해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내참, 기가 막히다. 열라 유치하고 서투르고 어떤 장면은 비웃음을 유발한다. 유지나도 한 뻥치는구만. 이따위가 영화재능이냐? 뭉클좋아하네. 마지막 에피소드 <죽거나 나쁘거나>가 뭉클의 범주에 들만한 부분이었는데, 난데없는 삐리리 음악에다 쥐어짜듯 오버하는 깡패새끼들의 신파에 눈을 질끈 감고싶을 정도였다. 눈알터져서 피 질질 흘리는거, 아마 첩혈쌍웅에서 패러디(류승완은 자칭 "패러디의 왕"이란다, 꼴깝도 여러가지군...)했나본데, 뭉클은 고사하고 이블 데드에서의 비슷한 장면처럼 웃길뿐이었다.(거 전라도 깡패의 원맨쇼와 함께 이 영화에서 젤 웃기는 장면이었다.) 성룡의 열렬한 팬이라는 감독겸 배우는 발길질에다 뭔가 돌려차기 같은거 열라 보여주는데,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발차기,라는 메리트를 빼고 보면 열라 싱겁다. 특히 <죽거나 나쁘거나> 에피소드는 성룡류의 액션에다 홍콩느와르 뭐 그딴 기분을 낼려고 했는데, 완전 삐꾸다, 이딴것도 재능이냐? 그 에피소드의 패싸움만 해도 카메라 흔들어대서 정신없는거 말고 도대체 어디가 창의적이고 사실감 느껴지나?

타란티노 같은 놈이 우리 영화계에도 나타났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냐? 아예 작정을 하고 기다리던 놈들처럼 아마추어적인 수준이하의 영화에다 대고( "... 형편없는 완성도를 갖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감상주의로 무장한 채 시종일과 쌈질을 하는 깡패영화가 나타난 것이다. 네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안에서 서로가 비균질적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으며, 종종 장면의 편집이 맞지 않거나 믿기 어려운 초보적인 실수가 사방에서 출현하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의 줄거리조차 산만해서 종종 인물의 감정을 놓치기 일쑤이다. 이 영화에 관한 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은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이 영화의 포스터이다..." 정성일, 말 7월호- 그러면서도 "이로써 우리도 콤플렉스 없는 액션영화를 볼 수있게되었다"같은 황당한 소리를 해대고 있는거다. 타란티노가 뜨기전 저수지의 개들을 그렇게 열라 씹어대던 그인간, 이제야 비로소 신세기 영화판의 경향이란 거 에 눈뜬건가? 잭키 브라운 이전의 타란티노 영화도 열라 똥이지만, 이 영화는 저수지의 개들 같은 영화에조차 비할바가 못된다. 저수지..는 적어도 이따위로 서툴고 유치하진 않았다. 하다못해 하비 케이틀이라도 나오지 않는가? ) 영화재능이라느니 천재라느니 요란을 떨고 지랄이다. 한국 영화판에서 성공하기 -> 노가다도하고 비됴가게 점원도 하고 고등학교만 나오고 뭐 그지랄하다가 골치아픈 뭔가 메시지나 미학적 완성도나 그딴거 집어치우고 어설픈 액션과 서투른 연기와 살벌한 욕지거리로 서툰 활극을 연출해라, 제길, 나도 하겠다.

<악몽>인가 하는 에피소드도 그렇다. 그 에피소드의 어디가 영화재능이냐? 돈없는 건 문제가 아니다. (4천달란가 가지고 만들었다는 로드리게즈의 엘마리아치를 생각해보자. 어따대고 더이상 패컬티 같은 영화는 안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햇소리냐, 류승완? 내가보기엔 너야 그런 영화 만들래도 못만들거같은데.) 서있는 주인공 뒤로 슬쩍 지나가는 귀신은 전설의 고향에서 봤고 배경에 빨려들듯 클로즈업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샘 레이미 영화에서 봤다. 결정적으로 하나도 안무섭다. 제길, 눈도 좋네, 여기 어디에 진정한 영화재능이 보이냐? 이름도 까먹은 첫번째 에피소드는 거의 경찰청사람들 수준이다. 그나마 좀 나은건 <현대인>인데, 이 영화가 단편영화가 아닌 이상 그거 하나만 갖고 좋아할 수도 없는거 아닌가? 딱 2500원주고 현대인만 봤으면 좋았을뻔 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재밌는건 배우들의 현란한 욕지거리인데, 그것도 시민극장의 그 환상적인 스피커로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이 영화, 극중 인물들처럼 말해본다면, 씨밸 조또아니다. 영화보고 이렇게 돈아깝기는 텔미섬딩이후 첨이다. (2000/08/06)

 

 

 

一個都不稜少 책상서랍 속의 동화 ★★★★
張藝謨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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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역시 가장 감동적인 영화는 건강한 영화다. 생양아치 새끼들 패싸움하는거나 열라 보여제끼는 "죽거나 나쁘거나"같은거나 똥같은거나 들먹이며 끝간데없이 퇴행하는 패럴리 형제 따위의 영화나,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보는 관객까지 조롱하나 싶은 홍상수 류의 예.술.영화가, 그 나름의 영화적 쾌감을 준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딴 영화는 보고나면 재수없다. 일전에도 한 말인데, 안그래도 뭐같은 인간 절라 많아서 짜증나는 세상에, 뭣땜에 재수없는 놈들 설쳐대는 영화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더 깊은 혐오에 빠져야겠는가 말이다. 뭐에 대한 저항, 반항 어쩌구 하며 패배의식과 자포자기적 방탕을 상업적으로 포 장하거나 그저 배째라고 겔겔거릴 뿐인, 말하자면 펑크적인 감성이, 돈독올라 뻔한 얘기를 뻔한 방식으로 반복해대는 영화산업의 야바위꾼들의 장삿속보다 덜 역겨울 것도 없다.

칸느 영화제에서 "국책영화"어쩌구 하는 헛소릴 해대서 장이모가 출품을 포기했다 ( 평론가들 역겹기는 울나라나 외국이나 마찬가진가보다. 눈도 좋지,이 영화가 어떻게 국책영화로 읽히는 것일까? )는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현실에 뿌리내림이 없이 공허한 말초적 쾌락에만 열광하는 관객과 영화제작자들에게, 니들이 지루함을 각오하고 좀만 더 심각해질려고 노력한다면, 니들이 열광하는 그 뭐같은 영화들은 결코 도달할수없는 감동과 영화보는 즐거움을 느낄수 있을 거다, 그런 가장 모범적인 예일 것이다. 어쨌거나 일이 저렇게 잘 풀리다니,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덴가, 싶은 의혹도 생기지만, 제목처럼 동화,라고 생각한다면,... 메이던가, 똥고집 말고는 세상사는 방식이란걸 전혀 알지못하는 답답한 이 주인공 여자애가 고생고생 끝에 학용품 한 트럭얻는다,는 보상조차 없다면, 제길, 얼마나 속상할까, 보는 사람도. 경이롭도록 힘차고 의지에 넘치던 "붉은 수수밭"같은 끝장 멋진 영화와, "홍등" 같은 영화제 수상용 영화( 동양인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나...)나 트라이어 든가 하는 황당한 영화를 alternatively 만들던 이 감독은, "귀주이야기" 이후로 과도한 예술가적 자의식과 현란할 뿐인 화면빨에의 집착 같은 것을 극복하고, 지가 나고 자란 중국의 민중들, 그 강인하고 건강한 생활의 현장에 발을 디딘것이다. 첸 카이거는 그렇게 쪼그라들지만 장이모는 계속 주목받는 것은 바로 이 차이가 아닐까...

뭐 딴 얘기지만, 다들 신인이라는 아이들의 연기는 정말 귀엽고 또 건강하다. 특히 여자 주인공, 메이던가,은, 건드리기만 해도 스르륵 옷을 벗어제낄 같은 분위기를 풍김과 동시에 *도 아닌 일에 두손 고양이 처럼 눈밑에 모으고 엥엥 울어제끼는, 일본제 미소녀나, 아직 젖비린내도 못벗은게 지가 무슨 스트립바 댄서나 된다는 듯이 에로릭하게 몸을 비 틀어대는 보아나 전지현이 같은 국산 미소녀들,을 볼때 느낄수없는, 감동적인 연기를 보인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터뜨리고 마는 메이던가,의 그 눈물은 성질 더러운 나같은 시꺼먼 변태의 눈시울도 적시고 마는 힘이 있던거고, 그건 결코 흉내내거나 연기한다고 되는게 아닌, 이 더러운 세상과 어른들의 협잡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 만이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순수와 진실의 힘일것이다.

장이모, 열라 멋진 감독이다. 몇몇 *같은 영화평에 또 속아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다니, 대체로 미안한 기분이다. 여튼, 인간이 싫어지거나 살기 짜증나시는 분들은 보시라, 우리에게도 저런 때가 있지 않았던가?... (2000/09/23)

 

 

 

미인 ★★★
여균동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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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욕먹어도 싼 영화란 생각이다. 이름도 몰겠는 주인공 여자의 캐릭터는 베아트리체 달 같은 강렬함이 부족하여 밋밋하고, 때로 억양이나 대사같은게 열라 오버하는 느낌이라 낯간지럽다. 남자가 왜 끝에 여자를 죽이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수없고 누구 말대로 여균동도 관객을 상대로 사기치기 시작했다 라는 말이 뭐 그런대로 일리 있어보인다...

하지만, 어떤 영화가 맘에 드느냐 아니냐는 영화의 완성도와 관계없을 수도 있다. 내게 있어 이명세의 영화중 가장 맘에 드는건 지독한 사랑이고 엠마뉴엘 베아르가 나왔던 가장 인상적인 영화도 마농의 샘이나 프랑스 연인이 아니라 겨울의 마음이었다. 이 영화들의 어떤 부분들이 내 기억속의 어떤 부분들을 자극하여 다시 떠올리게 하고 그 기억들의 의미들을 새롭게 음미하게 하는... 영화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말을 비슷한 감정으로 말했었지... 그런 놀라움과 회한 같은게 어떤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거다... 사랑이란 이런거다 하는 많은 말들, 뭐 다들 나름대로의 진실을 갖고 있는거겠지, 하고 물렁하게 생각한다. 사랑이란 미안하다고 말하는게 아니야, 음... 그런거겠지, 니가 곁에 있어도 나는 니가 그립다, 음... 그럴수도 있겠군... 많은 남자들 한테는 사랑이 정욕의 다른 이름이라 할지라도, 뭐 그 둘을 같은 거라 생각하는 것도 뭐 상당히 그럴싸 해보이고...

내가 주위에 있든 없든 상관도 안하는 무관심이나 힘들게 드러내는 속마음의 의미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무감각은, 최악의 조건이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지만, 너 거기 왜 있는데?라고 묻는 사람 옆에선 상처만 받게 되는게 아닐까... 조각난 자존심을 경멸로 바꾸지 않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속도 없이 언제까지나 바라만 볼뿐인, 이런 답답한 남자의 얘기는 뭔가 나름대로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나라면 저런 상황, 참을 수 없을거란 생각이다. 어쨌거나 여자, 잠은 저남자랑 자기때문인가? 뭐 이런 너저분한 추측의 나름의 감정적 증거가 될만큼 영화는 에로틱하고 여자의 몸은 자극적이다. 첨 등장할때와는 달리, 여자의 얼굴 볼수록 이뻐보이고, 베드씬 연기같은 것도 굉장히 리얼하다. 저런 여자라면, 나라도 집착하지 않겠는가, 싶은 기분이 들만큼 매력적인... 남자로 말할거 같으면, 딱 좋다. 저기 가슴팍에 근육이 좀 더 있었다면 영화가 어디까지나 에로물 수준으로 파악될지도 몰겠다 싶은...(2000/10/08)

 

 

 

섬 ★★★★
김기덕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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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영화나 돈쳐바른거 말고는 봐줄게 없는 영화같은 거, 그냥저냥 참으며 재밌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서툰 솜씨로 만든 엉성한 영화는 그게 아무리 영화사적 맥락에서 중요하든지 정치적으로 올바르든지간에 참아내지 못하겠다. 예컨대 내일로 흐르는 강,이나 김기덕의 전작들, 야생동물보호구역 같은 거, 배우들의 서툰 연기나 조악한 소품이나 어딘지 싸구려 냄새가 나는 듯한 화면의 질감 같은 건 짜증말고는 내게 자극하는 부분이 없는거다. 이 영화 섬은 저예산영화의 전형이자 희망처럼 여겨지던 김기덕이 2억이던가 어쩐가 상당히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영환데, 이전 작과는 달리 제법 영화같다. 한 마리 짐승같은, 뭔가 어두운 과거를 지닌 듯한 약간 맛간 녀자의 이 잔혹한 求愛記는, 김기덕의 이전 영화에서도 자주 보이던 리얼하고 잔인한 비쥬얼이 단순한 선정주의나 작가의식의 不備를 방증하는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어쩌구 하는 호의를 갖고 싶게 만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몇번을 기겁하게 만드는 엽기적인 장면 끝에 남자가 여자의 다리사이에 부채질해주는 장면이 나오고 나면, 아~ 씨발, 저런게 사랑이구나, 싶어지는거다. 스스로를 어떤 나락에 내던지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연하고 약한 속살이 도려내어지고 출혈과 호흡곤란이 자신을 죽음 언저리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끌려들어가고 마는 거다, 욕정과 기약없는 위안과 뭐 그딴거 때문에... 어쨌거나 자신을 창녀로밖에 안보는 놈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발악같은 최후의 자해를 준비하고 아픔에 비명을 지르는, 서정,인가 하는 주인공 여배우의 눈빛은, 전율이었다. 정말 멋진 연기다, 정도가 아니라, 어디서 저런 여자를 구해다 놨을까 싶은... (2001/01/07)

 

 

 

Dancer In The Dark 어둠속의 댄서 ★★★
Lars von Trie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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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영화다. 셀마의 죽음을 향한 107걸음에 관객의 눈물이 뿌려지길 강요하기 위해 드라마의 허술함과 제정신인지 의심이 가게 만드는 작위성까지 불사하더니 기어이 목을 매달고 만다. 맨 마지막, 교수형의 공포에 셀마가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지자 집행관들이 그녀를 무슨 보조기에 묶는 장면에선 당장 극장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정말 디지털이 잡아내는 화면이란 35미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동감있고 현실적이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의 순간적인 표정과 감정을 잡아내는 라스 폰 트리에의 솜씨는,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관의 명민한 결혼식 촬영기사의 캠코더와 뭐가 다른지 나로선 잘 모르겠지만, 여튼 놀라운 효과를 보였고 영화의 새디즘은 블러드 석킹 프릭스를 볼때만큼 나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이딴 식의 짓거리가 처음도 아니다. 침대에 누워 꼼짝을 못하는 남편의 그 거지같은 성적 망상을 온몸으로 현실화하다 찢기고 망가지며 죽어가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또 얼마나 병적이었던가? 이딴 걸 무슨 새로운 디지털 미학의 가능성이라는 식으로 상같은 걸 안기며 칭송해 마지않는 유럽의 평단이란 것들은 대체 무슨 정신들인가? 살려고 바둥대던 여자가 시력을 회복한 아들의 안경을 쥐어들더니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식의, 어이없이 유치한 설정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나? 언제나 백치같은 순수함으로 온갖 시련끝에 죽음에 다다르고 마는 여자들을 보며 감독은 무슨 구원을 꿈꾸는가? 이딴게 가능성이고 새로운 영화냐? 뭐 저딴 놈이 다 있나? 내가 본 가장 재수없는 영화였다. 영화라는 그릇이 얼마나 새로운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몸에, 그것도 여자의 몸에 저딴 비열한 폭력을 쏟아내곤, 자 이제 감동받으시라,고 으시대는 오만에, 아 놀라운 재능이다, 어쩌구 하며 박수를 쳐대는 사람들과 그들의 감동들은 대체 무슨 성격의 것들인가? 여튼 기분 더러워지는 영화였다. (2001/03/12)

 

 

 

オ-ディション 오디션 ★★★★
감독 : 미이케 타카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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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breed
Clive Barker 1990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시시하다 싶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줄거리였던 반면, 영화 오디션은 특히 후반부 가면 이게 뭐 어떻게 되가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신없다. 그러니까 저년이 저놈을 죽인거야 만거야? 사실 무라카미 류는 그의 데뷔작이었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정도가 류시화의 번역스타일이 그래서 그런지 몰겠지만, 뭐 누가 누구랑 하고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없던 반면 그밖의 소설들은 눈에 보일 듯 선명한 이미지와 젠체안하는 평이한 단어들로 이루어졌었다. 오디션도 마찬가지. 특히 주인공여자가 매니큐어 바른 손톱자국을 남자의 배위에 남기며 전희를 할땐 나까지도 짜릿했을 정돈데, 뭐 내가 변태라 그럴 수도 있지만, 소설 속의 그 여자의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고 술과 약기운에 취해 흐물거리는 그 중년남의 헷갈리는 정신상태에 대한 묘사도 깔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제 뽀르노(뿐이겠느냐마는)의 저 숱한 여주인공들처럼, 이 소설의 여자가 열라 스테레오타입화된 캐릭터라는 게 주원인이었던거같다. 생머리에 발레를 십수년 배운 엘레강스에, 전화를 할까 했지만 바쁘실거같아서, 같은 소심을 가장한 착한척, 얼굴은 이쁘고 피부는 하얗고, 하지만 가슴은 이따시만하고 벗을때 알아서 벗을 줄알고 테크닉도 좋은(소설에선 그 여자 테크닉도 좋다고 나온다.).. 소시적 나도 열라 바라마지하지않았던, 그리고 오늘도 저 숱한 정서발육부진의 한심남들의 성적 환상과 혹은 감정상의 공허감을 달래주던, 바로 그딴 캐릭터인거다. 막상 내 앞에 지나간다면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류의 헛수작이라도 걸어보고 싶은 환상의 여인! 저따위로 착한척 고상한척 하는 것들은 냄새나는 또랑같은 데다 쳐박아놓고 꾹꾹 밟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영화속의 여주인공이 바로 그딴 식인거다. 허허...근데 이 여자가 알고 보니 맛이 간 여자였고, 그 여자의 그 가장된 순수,소심, 청순 따위의 이미지에 황홀해하며 간이라도 내 줄듯이 달려든 중년의 숫컷을 아작을 내놓는 것이다! 정말 아작을! 어떤 아작인진 학교에서 입수할 수 있는 동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고, 정말 아작을 내는 그 마지막 20여분은 정말 기가막힌 새디스트적인 쇼다. 일본놈들은 정말 멋진 놈들이다. 특히 그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끼릭끼릭끼릭 같은 소리를 내는 여자의 목소리는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순진,청순,가련 같은 거 좋아하는 숫컷들에 대한 가장 정공법적인 통쾌극! 멋진 영화였다.


한편 클라이브 바커 감독의 Night Breed는 모름지기 공포영화같은 건 암만 허잡해도 즐길만한 부분이 하나씩은 있다는 내 지론에 힘을 실어주는 좋은 예가 되겠다. 이 영화의 캐릭터 들은 스핀 헤드던가, 헬 레이져의 캐릭터 만큼 끔찍하지도 창조적이지도 않고, 그저 지저분해 보일 뿐이지만, 이 놈들의 수난에 대한 정치적 혹은 성서적 은유(달의 종족을 이끌던 지도자 이름이 모세다)는, 버클리던가 철학과 나온, 죽음과 고통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다루어 온 감독의 취향이 십분 묻어나와, 상당한 재미를 안겨준다. 게다가 긴 칼에 관통된 채로 살인마와 쌈질을 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살인마를 되살리기 위해 신부가 십자형으로 묶여있는 살인마 시체의 찢겨진 가슴팍에 손을 쑤셔넣는 장면은 나름대로 만족스런 시각적 경험을 안겨준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살인마로 나와서 생긴대로 변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호러영화 만세!

 

 

 

와이키키 브라더스 ★★★★
임순례 2001
naver

'세친구'는 그 해 본 많은 영화들 중에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가장 칙칙하고 절망적인 영화였다. 때문에 '아마도 이 여자의 영화는 앞으론 다신 안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 했더랬고, 사실 그날 그 'TV프로' - 관객들이 살려내고 있는 영화들 어쩌구 하면서 고양이, 라이방, 나비와 함께 이 영화를 소개하던 무슨 건전한 저녁시간때 프로 -를 안봤더라면 이 영화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프로는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 표정에 나타나는 고양된 감정, 행복한 느낌, 충혈된 눈시울을 두루 갖춘 40대의 여선생님의 인터뷰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볼려고 자리를 안뜨고 있어요"라고 진심을 담아 내뱉은 그 아줌마의 말 한마디가 내겐 정성일의 영화평 만큼이나 신용스럽게 느껴서 결국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예상한 것 보다 조금 더 칙칙했지만 동시에 훨씬 더 감동적이었고, 대충 짐작이 가던 엔딩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토록 행복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비디오, 극장 통털어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영화였다. 혹 깡패영화나 엽기녀 영화같은 것을 보고 한국영화 좋아졌다 어쩌구 착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시험끝나는 대로 서울 올라와 이 영화 정도 봐주시면서 그런 같잖은 영화들에 보낸 열.광.이 우리의 영화환경을 얼마나 빈곤하게 만드는지 심히 우려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더불어 스크린쿼터 사수 어쩌구 하며 비장미에 도취되서 오버스런 표정을 지으며 삭발을 하던 임순례의 사진같은 것이 오버되면서 결국 문제는 미제 자본의 개방압력이 아니라 관객 일반의 기호-누가 감히 수준이라는 말을 하리요-라는 걸 지금은 그녀가 깨닫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사실 흠이 전혀 없는 영화라 할 순 없지만 이 영화가 전해주는 감동의 깊이와 질을 고려해본다면 그런 작은 흠 같은 것을 거들먹거리는 건 공연한 트집잡기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관객의 태반이 자리를 뜨지 않는 모습은 영화관람 경력 십수년 동안 씨네마떼끄에서가 아니면 본 적이 거의 없다. 평일 마지막 시간 때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진인데다가 3,40대 관객이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이 영화에 대한 좋은 반응을 보건데 이번달 말까지는 이 영화 극장서 상영할 것 같으니 어여 서울 올라와서 이 영화보시고 구원들 받으시라.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한가한 청춘들도 모두 나만큼의 감동을 받을 것이라곤 장담 못하겠다. 요컨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밑바닥에 가까운 곳에서 발버둥치는 하찮은 종류의 인간들이고 당신들은 자랑찬 포항공대의 전도유망한 공학도들이니까. 물론 개중에는 포항공대인데도 전자에 가까운 나같은 희귀한 케이스가 없으란 법도 없을테다. 하지만 학문적 성공같은 것이 자신이 이뤄낼 수 있는 많은 목표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자신만만해 있는 학우라면, 이 한심한 청춘들의 한심할 뿐인 希望歌 역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예컨대 전세계적으로 일년에 4천만명 이상이 굶어죽는다든지 취업대란에 졸업생들 갈 곳이 없다 류의 뉴스처럼 -로 들릴 터이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받기란 여간해선 힘들지 싶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비루한 일상을 다 팽개치고 잃어버린 너의 꿈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련?' 류의 선동을 목적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시적 꿈이 기타리스트였던, 지금은 공돌이인 아티스틱한 범생들에게조차 어필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아쉽지만 이 영화는 건너뛰시고 무슨 여피족이 초절정미녀와함께 돈자랑하며 사랑을 나누는 멜로같은 거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 영화 감상하면서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에 취해보시라고 권해드리겠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은, 나도 저 꼴나기 전에 어여 영어공부나 해야겠다 였다. 음... 산다는 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인가 보다.

한가지 궁금한 건 임순례는 왜 남자들 얘기만 하는 걸까, 하는 점이다. 결국 이 땅의 여자들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서 혹은 조만큼의 희망이라도 없어서가 아닐까? '세친구'에서 대학에도 실패한 세 남자는 하다못해 군대라도 갔지만 같은 해에 졸업하고 대학에는 못갔고 집도 부유하지 못한 인문계 여고생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20대 초반의 그 암담함을 견뎌냈을까? 시급 2천원의 아르바이트? 공장? 단란주점? 이도저도 아니면 결혼? 정말 궁금해진다. 그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고양이를 부탁해'도 어여 봐야겠다.

이 영화를 본 곳은 씨네큐브인데 참 멋진 건물이다. 멀티플렉스같은 소리를 하며 돗대기시장을 연출하는 메가박스 같은 곳에 비하면 씨네큐브는 여기야말로 극장이다! 싶다. 하이퍼텍 나다 쪽이 음향 같은 것은 더 좋은 것 같긴 하지만... (2001/12/4)

 

 

에로영화 편력기

어제 two moon junction을 봤다. 무삭제판이라는 의심스런 광고문구로 최근에 다시 출시되었는데, 비됴가게에서 그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싸~ 해지는게 묘한 그리움같은 걸 느끼게 하는 거였다. 20대의 문턱을 갓 넘은, 학고와 대인기피와 조울증의 그 시절, 그 망가져가는 젊음의 아이콘 같은 게 있는데, 하루키와 몇편의 에로 영화들이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오에 겐자부로와 쿤데라만 줄창 읽어대었었지만 하루키의 그 감칠맛나는 소설들의 재미에 비할 바가 못되었던 거다. 사람 없을만한 시간에만 올라가던 도서관에서, 아, 잼있어, 어쩌구 하며 읽어대던 상실의 시대, 일각수의 꿈... 어쩌구들... 내 생전에 다시 그렇게 재.밌.게. 소설책을 읽을 날이 또 올까,... 한편, 공포영화 뿐아니라 에로영화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호러존' 포항지부장님이시자 현 애기아빠이신 용가리님의 교시에 따라 찾아본 에로영화들 중에 두 편, 80년대 미국 에로영화계의 양대 산맥이신 잘만 킹과 에드리안 라인의 투문 정션과 나인 하프 위크,는 최근까지도 나의 에로영화 베스트였다. 킴 베신저(세계화의 물결 이전에는 이 아줌마, 이렇게 불려졌다.)의 먹을거갖고장 난치는 씬과 여인네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미키 루크의 그 우울하고 귀여운 표정... 뭔가 일이 시작되면 소리는 정상속도인데 화면은 슬로우가 되어버리는 순간의 그 안타까움과 분노! 도대체 무슨 장면이길래 짤랐을까, 궁금함에 가슴설레던... 지금같으면 검열철폐,같은 단어를 생각해내겠지만, 노태우 개새끼가 대통령 같은 걸 하다가 김영삼같은 꼴통한테 바통을 넘기던 그 즈음의 사회윤리와 일반인의 성적수치심 같은거로선, 뭔지 몰겠지만 저런 색스런 장면같은 건 삭제하는 것이 건전하고 명랑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초석이 되는 거라는 식의 사고회로가 자연스런 시기였기때문에,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서도 부당하다니, 이런 변태같은! 어쩌구 하며 자학을 해댔더랬다. 근데 최근에 DVD로 무삭제판으로 본 나인 하프 위크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안야한 거였다! 저런 정도의 노출이 문제가 되었다니, 도대체 90년대 초반이란 시절은 어떤 시절이었단 말인가. 또 킴베신저의 감당안되게 촌스런 화장발과 헤어스타일을 보면, 유행의 최전선에서 한 철만 입을 옷들과 올가을 유행하는 색조의 화장품과 헤어스타일을 무기삼아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여/남자들의 소모적이고 필사적인 노력들이 참으로 애처러워지는 거였다. (가끔 시내같은데서 스트레이트의 긴머리를 출렁거리는 여자들만이 시야에 잡히는 순간이면, 아, 신종 나찌들인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아마 당시 가장 인기있으니까 영화에 나오는 것일 여인네들의 가슴선 같은 것도, 요즘 영화(물론 남정네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게 목적인 영화)의 그것과 비교하여 많은 차이가 나는 걸 보고 있으면, 성적매력을 위해 몸에 칼을 대는 일부 여인네들의 고난에 찬 인생에 실로 가슴이 미어지고 만다. (물론 투 문 정션의 남자주인공 같은 근육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역기 들기에 여념이 없는 많은 남정네들도 있는거지만, 대부분의 에로영화는 여배우의 몸뚱이를 얼마나 고기스럽게 비치느냐가 관심의 촛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의 몸 같은 건 잘 안나온다...)
투 문 정션의 히로인, 셰릴리 펜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고 눈에 띄는 필모그래피도 없는 2류 배우지만, 이 영화찍을 23살이던가 그 즈음엔 정말 아름다웠다! 에로영화에서밖에 본 기억이 없는 여배우들 중 가장 출중한 외모라는 개인적인 생각... 물론 와일드 오키드 1편의 그 여배우도 굉장히 미인이지만, 그쪽은 원래 직업이 모델이라니까... 여튼 이 영화는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안야했다, 적어도 노출정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그 유명하다던 샤워씬 같은 것도 적당히 편집하면 15세 관람가도 만들 수 있을 정도니까. 치모가 드러나는 서너컷이 있기도 하지만, 행위의 리얼리티나 노출정도는 차라리 가소로울 정도다. 근데 뭐가 문제라고 당시에는 다 짤랐던걸까?

결론은 명확해 보인다. 그들이 관리할 수 있는 종류의 욕망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었던 거다. 성욕은 예컨대 스포츠 중계 어쩌구 같이 우리안의 전체주의를 견고히 하거나 개개인의 관심과 열정을 삶의 현장이 아니라 축구장이나 야구장의 좁은 공간에 한정지어 지배하기 더욱 편리한 인간으로 유도할 수 있는 성질의 욕망이 아니다. 가장 사적이고 동시에 가장 폭발적인,우리를 지배하는 위계와 억압의 양상을 가장 전복적인 방식으로 드러낼 수도 있는, 성욕의 꿈틀댐 같은 건, 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위정자들에겐 감당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섹시하다는 게 칭찬같은 걸로 통하는 솔직방탕한 시대, 2001년은 뭔가 더 좋아졌나? 별로. TV 같은데에 여고생같은 애까지 나와서 스트립댄서를 흉내내는 이 좋은 시절, 답답증은 가실줄 모른다. 저게 나나 너의 욕망일까? 유승준이 그의 여성팬들을 위해 돈 쏟아부으면 만들어 낸 가슴살을 드러낸 순간, 롤리타의 얼굴에 에로배우의 몸매를 한 전지현이라는 여고생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는 프린터 광고를 일말의 꺼리낌없이 볼 수 있게 된 순간, 우리의 성욕은 해방되었나?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성적 판타지는 우리 자신의 성적 상상력에 얼마나 터해있는가? 박경림 같은 여자가 전지현만큼이나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해괴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 최근에 본 에로영화, 최고작은 미인,이다. 역시 에로영화의 핵심은 여배우인거다. 물론 미인, 영화자체는 엉망이었지만... (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