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view

The Nanny Diaries 내니 다이어리 ★★★☆

Ozu 2013. 7. 23. 02:08

The Nanny Diaries 내니 다이어리 ★★★☆
Directors:Shari Springer Berman & Robert Pulcini
imdb    naver

스칼렛 요한슨의 로맨틱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심각한 영화였습니다. 애니(스칼렛 요한슨)와 윗집 총각 Harvard Hottie의 연애질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고, 대신 뉴욕(세계) 최상층 백인 사회의 속물성과 피폐한 정신세계를 신랄하다 싶을 정도로 묘사하고 있어요. 한국 포스터는 얼토당토않게 <악마는 프리다를 입는다>와 비슷한 영화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악마...>가 '보그'지라면 <내니 다이어리>는 '한겨레21'이랄까요.

제가 <내니 다이어리>에 정서적으로 더욱 공감하게 된 것은, 제가 과외선생으로 겪은 경험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남의 부유층 '어떤' 아줌마들은 <내니 다이어리>의 Mrs. X와 다를바 없어보였거든요. 버릇없는 '어떤' 아이들도 그레이어와 비슷했구요. 경제적으로 부유한데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니가 겪은 인격적 모독을 제가 경험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어떤 '모욕감'이 느껴진 경우도 몇 번 있었고, 바로 그 점이 저를 과외질에서 발빼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내니 다이어리>에서 애니와 윗집총각의 연애는 군더더기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소설의 잠재적인 관객층을 고려하면 연애질 설정을 넣을 수 밖에 없었겠지만 말이에요. 그들의 연애는 로맨스 소설의 그 진부하고 비현실적인 가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싸가지없고 잘난척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슬픈 과거를 가진 여린 심성의 남자다. 혹은 그다지 이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그녀지만 그는 그녀의 솔직하고 건강한 매력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혹은 여자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그는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뿐이다. 단순히 통계의 문제로 생각해봐도 Harvard Hottie가 술집에서 애니에게 서슴지 않고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그런 백인 부유층 자제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무리지어있는 수컷들의 행동학으로 예측해본다면 Harvard Hottie는 애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비슷한 짓을 했을 가능성이 크구요. Mrs. X의 충고처럼 애니같은 여자에게 Harvard Hottie같은 남자는 못 올라갈 나무이고, Harvard Hottie로서도 적당히 즐기다 비슷한 '계급'의 적당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애니를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내니 다이어리>는 최상층 계급의 관찰자로서는 꽤나 엄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정작 관찰자 자신에 대해서는 순정만화적 애정관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하긴 '인류학' 보고서도 아니고, 그런 현실을 어느 여성관객이 보고 싶어하겠습니까?

가진자를 비난하고 그들 삶의 위태로운 부분을 놀려대는 건 쉬운 일이고, 또한 어떤 '전략'으로써 여전히 유효한 접근법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비난과 놀림이 못가진자의 자기변명/위안을 목적으로 한, 한심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겠지요. 그 많은 부를 축적할만큼 영리하고 교육받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데, 과연 그들의 삶이 불행할 확률이 못가진자들의 그것보다 더 클까요? 가령 색소 잔뜩 든 잼같은 걸 숟가락으로 퍼먹고 자란 애니가 두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란 그레이어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될까요?

옛 과외 학생에게, 그리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제 조카에게 "오늘날은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는 계급사회다. 조선시대엔 혈통에 의해, 오늘날은 돈에 의해 계급이 결정되지만, 둘 다 세습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말한 적이 있습니다. 5,6살 먹은 아이에게 진학에 유리해지기 위해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특정 학교에 입학하지 못 했다고 광분하는 The Xs 를 보며, '있는분'들이 자기가 가진것을 지키기 위한 치열함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구나, 싶었습니다. 역시 무서워요, 있는분들은. 

(2008.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