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view

Ballon rouge, Le 빨간 풍선 ★★★☆

Ozu 2013. 7. 22. 20:12

Ballon rouge, Le 빨간 풍선 ★★★☆
Directed by Albert Lamorisse
imdb

전 특정 연령대의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기능적'인 이유에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말이 좋아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지, 그게 정말 아이들의 시선일까요? 아이들이 갖고 있는 천진성과 순수함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영화의 메시지에 진정성을 부여하려는 수작이죠. 가장 짜증나는 케이스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수난'에 빠지게 하는 영화입니다. 자파르 파나히의 <하얀 풍선>같은 영화말입니다. 금붕어 살 돈을 잃어버려 안절부절하는 꼬마 아이를 한 시간 반 동안 지켜보며 저는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천진함이 그 영화의 주제였다면 왜 그렇게 새디스틱하고 작위적인 설정으로 아이들을 괴롭힐까요? 가장 극악의 케이스는 '소녀 강간'입니다. 순수함을 짖밟는 비정한 세상의 일면을 묘사하는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이용되지요. 브레송의 <무셰트>나 자발적인(?) 매춘행위였지만 앙겔로플로스의 <안개 속 풍경>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 영화들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비열하고 뻔뻔한 방식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나 의심스럽습니다.

제게 만족스러웠던 아이들 주연의 영화로는 <뽀네뜨>가 있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네 살짜리 여자 아이를 연출하기 위해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 맞추었습니다. 뽀네뜨를 연기한 Victoire Thivisol의 놀라운 연기력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이 영화에서 뽀네뜨가 엄마의 죽음과 그것을 긍정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들은 연기의 흔적이 없습니다. 엄마 살리는 주문을 외운다거나 하면서 지극히 아이다운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지요. 이 영화에서 뽀네뜨는 귀여운 얼굴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할 따름인  인형이 아니라, 자기에게 닥쳐온 아픔을 힘겹지만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는 진짜 '아이'를 연기한 것입니다.

<빨간 풍선>도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마치 미취학 아동을 위한 그림책, 예를 들자면 레이먼드 브릭스의 <스노우맨>을 보는 느낌입니다. 어른이라면 진지하게 받아들일 건덕지가 전혀 없는 공상을 영화로 만들었거든요. 가로등에 매달려 있는 빨간 풍선을 한 아이가 우연히 갖게 되고 그 풍선은 마치 강아지라도 되는 양 그 아이를 졸졸 쫓아다닙니다. 정말 아이다운 공상이에요. 영화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어떤 메시지를 숨겨놓지도 않았고, 일부러 환상적으로 연출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옷장 속 괴물에 대한 망상을 실재화하여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상상력처럼, 이 영화도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을 마치 현실인양 성실하게 묘사할 뿐이죠.

아이들의 세계라고 공포와 고난이 없겠습니까? 풍선에 대한 다른 아이들의 이유없는 증오는 풍선을 터뜨리겠다는 악의로 드러납니다. 영화 후반부의 추격씬과 아이들이 풍선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장면은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을 줍니다. 어른에게야 까짓 터지면 그만일 풍선이지만, 영화는 풍선 하나의 소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공포감까지 잡아냅니다. 그 공포가 제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 영화에는 그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여튼 멋진 영화였습니다. 역시 아이들의 영화는 아이들의 느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2005·01·21 2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