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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t Jones: The Edge of Reason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

Ozu 2013. 7. 22. 20:12
Bridget Jones: The Edge of Reason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
Directed by Beeban Kid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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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본 영화입니다만, 생각난 김에 낙서해봅니다...

십몇년전쯤에 방영된 TV일일 연속극 하나가 생각나는군요. 구한말 비천한 신분 출신의 한 남자가 서양요리사로 성공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소재도 특이했지만, 그 드라마가 아직도 기억에 남은 건 다른 이유때문입니다. 남자 주인공이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미남이 아닌데도 무슨 양가댁 규수(금보라였던 것 같습니다.)와 다른 어떤 미녀로부터 동시에 사랑을 받는다는 설정이었거든요. 당신도 동의하겠지만, 그렇게 볼품없게 생긴데다가 몸짱도 아니고 가진 것도 좆도 없는 남자가 두 명의 미녀로부터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받는다는 것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던 거지요.

전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며 어이없다고 느꼈던 이유도 그 드라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능력도 없는데다가 반쯤 알콜중독에 꼴초, 하다못해 몸매가 빵빵하지도 않은 노처녀가 어느날 갑자기 능력있는 인권 변호사와 잘나가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는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구요. (귀여니씨의 '늑대의 유혹'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구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 무척 재밌는 영화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정서발육부진의 유아기적 환상에 어떤 '공감'을 느끼며 현실감있는 영화라고 추켜세우는 현상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브리짓이 남자라고 가정해봅시다. 잘하는거라고는 '섹스'뿐인 반쯤루저에게 능력있는 쭉빵걸이 두명이나 달려드는 영화라면 어느 남자관객이 혹은 여자관객 그 영화를 진지하게 보며 '공감'씩이나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를 보면 왜 마크와 다니엘이 볼품없고 실수투성인 브리짓에서 푹 빠져있는지, 그 이유를 드디어 알 수 있습니다. 브리짓은 타고난 섹스머신이었던 거에요! 마크와 애인사이로 지낸 7주 며칠 사이에 칠십몇번이던가의 섹스를 하는 왕성한 성욕과, 천하의 오입쟁이 다니엘의 입에서 "넌 내가 겪어본 최상의 섹스 파트너였어"라는 고백을 내뱉게 할만큼 현란한 테크닉을, 브리짓은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좀 허망하군요. 르네 젤위거가 아닌 실제적 인간 '브리짓'은 좀 더 속깊은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랑스런 여자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게 그거였던 거에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에서 브리짓과 마크의 사랑은 위협하는 건 계급적인 차원의 갈등입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마크는 최상위의 교육을 받으며 상징자본을 획득하여 지배계급의 지위를 성공적으로 세습한 반면, 브리짓은 교양없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냥저냥 굴러먹다가 운좋게 굴러온 호박을 챙긴, 별로없는집 출신입니다. 브리짓은 지배권력의 핵심부-법조인 파티-에서 "거지는 그 자신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설파하는 남자에게 없는계급출신다운 분노를 표출하며 대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 주눅들며 급기야 마크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안봐도 비디오인 아웅다웅 끝에, 마크와 재결합하지만, 둘 사이의 계급적 갈등은 어떻게 해결된 것일까요? 정답은 Power of Love. 브리짓은 중요한 것은 마음일 뿐이라며 자기암시를 걸고 마크는 브리짓이 뭔짓을 해도 이쁘니까 결국 프로포즈까지 합니다. 브리짓은 좋겠어요. 천만다행으로 마크가 저런 낭만주의시대적 애정관을 갖고 있어서.

태국의 마약의 천국 쯤으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공정한지는 따지지 맙시다. 어쨌거나 영화는 꽤 재밌었으니까. 우리나라를 마약 천국으로 묘사한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브리짓이 안 이쁘고 안 날씬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2005·01·05 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