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zu/review

秋日和 가을 햇살 ★★★★

Ozu 2013. 7. 22. 11:14

秋日和 가을 햇살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imdb

오즈의 영화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영화는 그의 영화 <늦봄>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홀아비를 두고 차마 결혼하지 못하는 딸이 홀어미를 두고 차마 결혼하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로 바뀌었지요. 재밌게도 <늦봄>에서 딸로 나왔던 하라 세츠코가 이 영화에선 홀어미를 연기합니다. (이것 역시 오즈의 영화이니 새삼스러울 것 없습니다만...)  전 하라 세츠코를 흑백영화를 통해서만 보아왔고 그 영화들 속에서 그녀는 항상 젊었거든요.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마흔이었던 그녀는 컬러영화라 그런지 노화의 흔적이 역력한,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저를 조금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놀람은 실망이나 허망함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카메라 앞에 앉아만 계셔도 저는 그만 감동해버리고 마는, 감동적인 우아함이었어요. 마흔의 여성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녀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전 이 영화에 별 4개를 줄 수 있습니다. ^^;

<늦봄> 이후 오즈의 영화에선 카메라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더군요. 조금 신경쓰며 확인해보았습니다만,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어요. 먼저 자리잡고 '앉은 채'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앞으로 등장인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들은 확실히 홍상수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홍상수는 그에게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브레송과 오즈 야스지로 등을 언급하더군요.)

이 영화는 무척 웃깁니다. 세 중년남들의 '지저분한' 대화는 여느 코미디못지 않게 즐거웠습니다. '맨솔레담' 어쩌구 하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박장대소. 하지만, 친구의 미망인과 그녀의 과년한 영애에 대한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그 지저분한 대화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불쾌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런 대사를 영화속에 집어넣은 오즈 야스지로와 노다 고고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오즈 영화의 인물들은 하다못해 부부끼리도 껴안지 않는 엄격한 격식과 정중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저 지저분한 대사들이 더욱 천박하게 느껴졌습니다.

akibiyori1sss.gif<늦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시집간 딸의 방에서 사과를 깎던 늙은 애비의 손을 잡아낸, 마지막 장면이었지요. 이 영화에선 비슷한 설정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래요. 이불 '한' 채만이 깔린 어두운 방에서 쓸쓸히 앉아있는 하라 세츠코의 뒷모습을 보여준 후 카메라는 어두침침한 아파트-하라 세츠코가 사는-의 복도를 보여줍니다. 그 쓸쓸함이란... 저의 어머니가 생각나 잠깐 코가 시큰했습니다.

오즈는 여섯 편의 컬러 영화를 찍었습니다. 전 그 색감이 참 맘에 들어요.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약간 바랜 화면은 따뜻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세트로 세워둔 듯한 벽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흘러가는 게 보이면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쓰는 감독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패전 후 꽤 시간이 흐른 후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 영화에도 이차대전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습니다. 직접 참전했던 남자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공호 같은 곳으로 피신해야 했던 아내와 딸의 입을 통해서 말이죠. 이렇듯 전쟁은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간에 개인의 삶에 큰 위협이고 상처입니다.

하라 세츠코의 딸 역을 맡은 츠카사 요코도 무척 우아하고 아름다운 배우였어요.

오즈 영화의 배우들은 온천 얘기만 나오면 '슈젠지'를 거론하는군요. 거기 온천이 그렇게 좋은가요?

류 치슈는 없어도 상관없을 미미한 역으로 등장합니다. 류 치슈를 등장시키려고 억지로 만든 배역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4·05·3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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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가을 햇살 秋日和
Late Autumn
1960년, 129분, 컬러, 영어자막
돈 사토미의 소설을 기초로 오즈와 노다 고고가 각색한 작품으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낸 풍속 희극이자 풍부한 유머와 오즈적 에로스가 느껴지는 품격있는 작품.
<가을 햇살>에서의 가을이라는 계절은 부모들의 세대를 일컫는 말로 결혼이라는 주제와 혼자된 부모를 두고 떠나기를 망설이는 딸의 관계를 역시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초로의 친구들은 친한 친구의 미망인 아키코의 딸 아야코의 혼인을 돕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그녀의 딸은 혼자 살게 될 어머니를 걱정해 결혼을 망설인다. 결국 친구들은 그녀와 어머니 모두를 결혼시키기로 계획하고, 그들 중 평소 미망인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히라야마는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