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中天網島 동반자살 ★★★☆
心中天網島 동반자살 ★★★☆ < 일본전통문화론 > 분라쿠의 사랑과 죽음의 문제
감독 : 시노다 마사히로
imdb
무척 유명한 영화죠. 크라이테리언판으로 DVD도 진작에 나와서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일본전통인형극인 ‘분라쿠(文樂)’의 양식을 차용했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무척 기대를 했습니다. (분라쿠는, 여러분도 TV같은 데서 분명 보았을텐데, 아래 그림처럼 검은 옷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검은 배경을 뒤로 하고 인형을 조작하는 인형극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에 관한 사항들을 검색해보니 이런 내용이 나오는군요. 이 영화는 지카마쓰 몬자에몽이 쓴 < 소네자키신주 > 라는 분라쿠 대본을 영화화한 거라는군요. 실제 영화와 오리지날 < 소네자키신주 >의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궁금하신 분은 이 글 맨 밑에 "분라쿠의 사랑과 죽음의 문제"라는 글을 참고 하세요. < 소네자키신주 >에서 신주(心中)라는 단어는, 이 영화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단어인데, 사랑하는 남녀가 한날 한시에 같이 죽는 일을 나타내며, 18세기 초에 사회적 유행처럼 성행하여 많은 남녀들이 실제로 동반자살했다고 하는군요. < 소네자키신주 >도 실제 있었던 ‘신주’를 대본화한 것이라고 하구요.< 동반자살 > 은 대본뿐만 아니라 분라쿠의 형식까지 빌어 만든 실험적인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저는 분라쿠를 본 적이 없어서 잘은 알 수 없었지만.) 분라쿠의 형식을 빌었다는 것이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기다유(인형의 대사와 극의 내용을 노래로 전개하는 역. 이 영화에선 대사까지 대신 읊지는 않구요, 영화 중간에 간간히 극의 내용에 대한 하나마나한 해설을 합니다.)의 참견과, 닌교즈카이(인형조정자)의 등장일 것입니다. 특히 닌교즈카이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검은 옷을 입고 세트 내부에서 쪼그리고 앉아 가끔 웃.기.는. 짓을 합니다. 아, 압니다. 그런 장면보고 웃는다는 건 타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고, 분별없는 짓이라는 걸요. 하지만, 닌교즈카이들이 하는 짓은 정말 골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만 웃은 건 아니에요. ^^; 가령 신주를 앞두고 지헤이가 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옆에 서있는 닌교즈카이가 그에게 칼을 건네줍니다. 지헤이의 부인인 오산이 전당잡히려고 기모노를 보자기에 싸는 장면에선 닌교즈카이들이 보자기를 대신 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웃지 않을 수 없었어요. ^^;;
저 신경거스리는, 혹은 가끔 어이없는 닌교즈카이들의 존재감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형식적 실험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오버에 오버를 더한 연기-그런 오버질은 분라쿠에서 인형들의 연기를 차용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는 심각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전혀 아니었어요. 저만 웃은 게 아니었거든요. ^^; 이 영화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것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기생 코하루 역과 부인 오산 역은 1인2역이군요. 코하루는 무지하게 이뻤고 오산은 그저 그랬는데, 그게 화.장.발.이었다니. 어째 좀 으스스합니다.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사실은 화장발로 변장은 한 전혀 다른 여자라면...? ^^;
여튼 코미디로 본다면 썩 훌륭한 완성도이지만, 심각한 척하며 보기에는 너무 웃긴 영화였어요. ( 2004·05·05 03:38)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TITLE (K) 동반자살
TITLE (E) Double Suicide
TITLE (O) 心中天網島
DIRECTOR 시노다 마사히로 Shinoda Masahiro
ADDITION 1969 | 35mm | 104min | 일본 | b&w
치카마츠 몬자에몽의 동명 인형극을 영화화한 시노다 마사히로의 걸작. 저예산으로 인해 세트를 지을 수 없었던 제작환경을 역이용하여, 추상적인 세트와 검은 배경 속에서 일본 전통인형극인 분라쿠의 양식을 차용함으로써 실험적인 형식미의 극한을 보여준다. 오사카의 상인 지헤이는 유녀 코하루를 사랑하지만 부인과 자식을 버리지는 못한다. 아내에 대한 의리와 코하루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지헤이는 결국 코하루와의 동반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마치 인형처럼 움직이는 인물들의 연기 속에서 죽음으로 향해가는 정념을 농밀하게 그리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
ATG (Art Theater Guild)
自主製作 自主上映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 순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월 4일부터 9일까지 6일간 일본독립영화의 뿌리 “ATG 영화 특별전”을 마련합니다. ATG(아트 시어터 길드Art Theater Guild)는 예술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위해 1961년 설립된 조직으로, 일본 전역에서 10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을 통해 예술/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관객에게 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독립제작사들과 손을 잡고, 1천만엔이라는 적은 예산으로 실험적이고 과감한 독립영화들을 직접 제작하면서 일본에서 독립영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ATG는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기획과 관객의 저변확대를 통해 일본독립영화 문화의 확립에 기여해왔으며, ATG의 역할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일본영화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평가받고 있을 만큼 60년대 이후 일본영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ATG 영화 특별전에서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ATG에서 제작, 상영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상영합니다. 시노다 마사히로의 <동반자살>, 와카마츠 코지의 <천사의 황홀> 등과 더불어 그간 필름으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요시다 기쥬의 <에로스 + 학살>, 테라야마 슈지의 <전원에 죽다>, 이시이 소고의 <역분사 가족> 등 9편의 작품이 상영됩니다.
중앙대 박전열 교수
◈ 일 러 두 기 ◈
일본의 전통문화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있으며, 각 장르는 각기 일본의 역사와 더불어 독특한 내용과 정서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일본의 전통연극의 한 장르인 일본의 인형극 즉 분라쿠(文樂)는 근세 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독특한 연출양식과 주제를 담아 일본인들의 정서와 심미의식을 잘 전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 강좌의 테마는 「분라쿠의 사랑과 죽음의 문제」, 즉 분라쿠에 나타난 근세인들의 사회적 환경은 어떠하였으며,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이런 사랑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때는 저승에서나마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 목 차 ◈
제1장 분라쿠의 주제
1. 분라쿠의 발생과 명칭
2. 인형과 대사와 사미센
3. 무대와 연기
4. 내용별 분류법
제2장 세와모노의 시대적 배경
1. 조닌사회의 신분 계층
2. 당시의 기녀제도
제3장 『소네자키신주』에서의 사랑의 문제
1. 신주라는 죽음의 방식
2 소네자키신주 - 그 사랑과 죽음
제4장 허실피막론이라는 극작이론
제5장 총정리
제1장 분라쿠의 주제
1. 분라쿠의 발생과 명칭
일본 전통인형극 즉 분라쿠 역사의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인형극은 떠돌이 예능인이 조그마한 인형극 무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혼자서 인형도 놀리고 대사와 효과음도 내는 식으로 하는 간단한 구경거리였다. 이런 인형조종자를 닌교즈카이(人形遣い)라 하였다.
한편 예능인들 가운데는 사미센(三味線)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미센히키(三味線引き)라고 하는 이 예능인들은 각집 문전을 방문하거나, 잔치 자리에 가서 사미센 연주활동을 하였다.
또 한편, 예능인들 가운데는 장편 서사시를 노래하며 각집 문전이나 잔치 자리를 방문하는 노래패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기다유(義大夫) 혹은 다유(大夫)라 했고, 그들이 조루리히메(淨瑠璃姬)를 주인공으로 하여 부른 노래를 조루리(淨瑠璃)라 하였다.
17세기 초기에 이들 3종류의 예능인들 즉 닌교즈카이, 사미센히키, 기다유 등은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어 흥행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착목하여,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다. 공동작업에 의해서 닌교즈카이는 인형의 조종에만 전념하고, 사미센히키는 악기 연주에만 전념하고, 기다유는 극의 대본을 열심히 노래부르면서 종합연극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동 작품이 관중에게 크게 호응을 얻어 짧은 기간에 그 인기가 하늘을 치솟게 되었다.
이런 3종류의 예능인 즉 3종류의 엔터테인먼트가 하나의 무대에서 역할분담으로 만든 인형극은 닌교조루리라 불리게 되었다. 닌교조루리란, 닌교 즉 인형으로 조루리와 유사한 작품을 연기한다는 뜻에서 나온 명칭이다.
관중들은 닌교조루리의 정교한 인형놀림과 풍부한 감정을 자아내는 사미센 연주, 기다유의 입체적인 노랫가락으로 전개하는 연극의 내용에 매료되었다. 닌교조루리 관계자들은 새로운 연출법과 새로운 소재로 작품을 끊임없이 발표하여 관중의 환호에 부응하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였다.
관중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던 닌교조루리는 한 때 침체기를 겪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오사카에서 조루리의 명인인 우에무라 분라쿠켄(植村文樂軒 1737-1810)에 의하여 다시 한번 크게 부흥되었다. 닌교조루리의 명칭을 맛본 이후로는 분라쿠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문하생들은 인형극단을 만들고, 전용 극장을 개설하여, 스승인 우에무라 분라쿠켄의 이름을 따서 분라쿠좌(文樂座)라 하였다. 이 명칭은 일본의 전통인형극을 지칭하는 공식명칭이 되었다.
2. 인형과 극중 대사와 반주악기 사미센
분라쿠 감상의 묘미 가운데 다른 연극에서는 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매력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인형의 연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인형의 다양한 동작과 섬세한 표정을 감상할 때는 배우가 하는 연기와는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나무를 깎아 얼굴을 만들고 옷을 해 입힌 무생물의 인형이지만, 인형조종자인 닌교즈카이의 조종에 따라서, 늠름한 장수의 기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고생을 견디며 부지런히 일하는 서민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때로는 사랑하며 기다리는 애틋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초창기의 인형은 매우 단순한 모양에 표현도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인형조종자들이 인형을 좀더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하여 인형의 손발과 몸체 그리고 머리에 여러 가지 장치를 고안하였다. 손에 칼을 쥐고 휘두르는 장수의 호쾌한 동작에서부터, 눈물을 닦는 여인, 울음을 참는 여인, 바느질을 하는 여인의 섬세한 동작에 이르기까지 인형의 손놀림은 매우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것은 하나의 인형에 세 사람이나 매달려 인형의 동작을 분담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형조종 방식을 산닌즈카이(三人遣い)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인·시녀·통행인 등 그리 중요하지 않은 단역(端役)이나 동물의 인형인 경우에는 한 사람이 조종할 때도 있는데, 이런 방식은 히토리즈카이(一人遣い)라 한다.
여러 분라쿠 작품에 등장하는 개별적인 인물의 수효는 수없이 많지만, 현재 분라쿠에 쓰이고 있는 인형의 머리의 종류는 약 40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초창기인 17세기에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때마다 등장인물에 맞추어 인형의 머리를 새로 만들었다지만, 이후로는 한번 만들어 두었던 인형의 머리를 다른 작품에 다시 쓴다. 이들 약 40종류의 인형에 의상을 바꾸어 입히고, 다른 소도구를 들리고, 헤어스타일을 바꾸어 다른 작품에 다른 등장인물로 나온다.
인형은 인물인형으로 남자 인형, 여자 인형 이외에도 동물의 얼굴인 서유기의 손오공(孫悟空), 저팔계(猪八戒)가 있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순간에 요상한 여우로 둔갑하는 것도 있다. 요괴가 순식간에 변신하도록 장치한 인형도 있다. 이런 변신하는 대목은 인형조종자들이 인형조종 실력을 발휘하는 대목이자, 관객들이 열광하는 대목이기도 한다.
인형의 머리는 오동나무나 노송나무를 깎아서 만드는데, 속을 파낸 뒤에, 눈동자나 눈썹 혹은 입이나 턱을 조종하여 다양한 표정을 나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한다.
인형 머리의 움직임과 표정은 오모즈카이(主遣い)가 담당하는데, 머리통 아래 부분에 손잡이를 만들어 쥐고 동작과 표정을 조종한다. 손잡이에는 눈이나 눈썹, 입을 움직이기 위한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이를 돌리기도 하고 당겼다 늦추었다가 하면서 여러 가지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
3. 무대와 연기
객석에서 분라쿠 무대를 보노라면 일반 연극의 무대에 배우들만 등장하는 것과 달리, 무대에는 ① 인형과 인형조종자 즉 닌교즈카이 ② 인형의 대사와 극의 내용을 노래로 전개하는 기다유 ③ 사미센으로 기다유의 노래의 반주와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사미센히키 등이 나와서 공동분업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 중앙에는 배경과 대도구 즉 세트를 설치하며, 인형조종자들이 인형을 조종하며 등장한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유카(床)라는 작은 무대를 설치한다. 유카는 기다유와 사미센히키가 앉아서 등장인물의 대사와 지문을 조루리 형식으로 노래하는 자리이다.
분라쿠의 무대는 일반 연극의 무대와는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극의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배경을 설치하고, 세트를 배치한다. 인형의 키는 인물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 인물보다 조금 작게 만든다. 보통 인물은 1.3미터 정도로, 키가 큰 인물은 1.5미터 정도로 만들기 때문에 건물이나 장치, 소도구도 이 크기에 맞추어 실제보다 조금 작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무대 장치를 만드는 방식은 다른 연극과 같지만, 무대의 바닥은 다른 연극과는 달리, 특별히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낮게 만든다. 이 통로는 무대 바닥보다 36센티미터 정도 낮추어 만들어, 인형조종자의 눈 높이와 인형의 눈 높이가 비슷해지도록 한다. 무대에 낮추어 만든 통로 부분은 배의 밑창처럼 만든다고 하여 후나소코(舟底)라고 부른다. 후나소코는 앞에는 가림대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객석에서는 인형조종자의 발이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다.
4. 내용별 분류법
분라쿠는 어떤 작품이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먼저 정리해서 말하자면 분라쿠는 일반적으로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서 ① 시대물 즉 지다이모노(時代物) ② 세와모노(世話物) ③ 무용극(舞踊劇) 등으로 분류한다.
① 지다이모노란 시대물이라는 의미이며, 신화시대를 비롯하여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시대 등 에도시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귀족과 무사들의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헤이안시대 전기의 귀족들의 활약을 그린 시대물은 오지다이모노(大時代物) 혹은 왕대물 즉 오다이모노(王代物)라 한다.
지다이모노의 다른 장르보다 작품 수가 많아 분라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연출이나 연기, 작곡 등의 면에서 과장되는 면이 많고, 의상이나 무대도 화려하며 양식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지다이모노 시대물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고 하지만 순수하게 역사를 그대로 그려내는 역사극(歷史劇)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소재를 따오지만 등장인물의 이름과 시대를 재설정하고, 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꾸며낸다. 극의 스토리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 양식화된 연출, 과장된 사건과 인물, 드라마의 서사시적인 스케줄의 장대함을 관극의 즐거움으로 삼는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윤리관이나 극도의 과장된 표현과 기교 등은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 그러나, 사실성을 중시하는 현대극과는 달리 작품에 몰입할 때 느끼는 해방감과 통쾌감이 분라쿠의 매력이 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관객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②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지다이모노와 달리 당대에 항간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로서 인기를 얻었다. 이런 작품군을 세와모노라 한다.
세와모노란 세상(世上), 세간(世間)에서 일어난 이야기(話)를 다루는 장르로써, 17세기 후반에 발생되어 그 시대의 서민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세와모노란 분라쿠나 가부키 등의 연극 장르에서는 물론 소설문학 장르에서도 쓰이는 용어이다. 세와모노는 과거를 소재로 하는 지다이모노와는 달리 자신들의 주변에 일어났던 일, 생동감 있는 이야기, 자신들과 관련된 이야기로써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③ 분라쿠의 또하나의 종류로, 무용극이 있다. 분라쿠에서의 무용극이란, 쇼사고토(所作事)라고도 하는데, 무용극은 극의 스토리보다는 인형의 춤을 감상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잘 알려진 스토리의 일부분을 기다유의 노래에 맞추어 인형이 우아하게 추는 춤을 감상하는데 목적을 두는 장르이다.
제2장 세와모노의 시대적 배경
이로써 분라쿠는 지다이모노, 세와모노, 무용극 등으로 분류됨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이 가운데서도 세와모노의 시대적 배경 즉 당시의 사회상과 지카마쓰 몬자에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세와모노는 오사카나 교토 등의 대도시의 항간에서 정사(情死) 사건이나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 발생 수일만에 무대화하여 상연함으로써 시사성을 띠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관객들은 최근에 주변에서 일어난 최신 뉴스를 분라쿠라는 연극형식을 통해서 감상한다는 미디어적인 효과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세와모노의 또 하나의 주제는 의리와 인정의 묘사였다. 이런 작품에는 당시 상인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윤리관이었던 주인과 점원 사이 혹은 서민들 사이의 의리관계, 인기 씨름꾼 즉 스모토리(相撲取り)나 협객의 인정이나 의리를 다루는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에도 후기인 19세기초에는 서민 가운데서도 특히 하층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나와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와모노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있는 테마는 남녀간의 영원한 문제인 사랑과 정사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이루기 위해 남녀가 함께 자살하는 일을 신주(心中)라 하여 관객의 흥미를 집중시켰다. 이 신주에 대해서는 뒤에 논하기로 한다.
세와모노는 지역과 역사를 달리하는 외국인인 우리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 즉 조닌사회(町人社會)에 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당시 조닌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서도 여기서는 특히 상인사회의 문제, 즉 상점의 운영 제도와 기녀들 즉 유곽의 제도에 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1. 조닌사회의 신분 계층
17세기 후반 이후, 도시의 발달과 상업이 번창해지자 오늘날까지도 존속되고 있는 미쓰이(三井) 등을 비롯한 호상(豪商)들이 나타나서 활발하게 상업을 전개했다. 이런 대상인의 상점에는 수많은 하인 즉 점원을 두었는데, 점원은 상점의 주인과 주종관계를 맺고, 호코닌(奉公人)이라는 형식으로 고용되게 되었다. 호코닌이란 현대 사회에서의 고용관계를 맺은 점원과 주인 사이와는 매우 다르다. 점원은 자신의 고용을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라고 생각하고, 일생을 두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주종관계는 단순한 사무적인 관계가 이니라 일종의 의리라는 인간관계로 유지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689년 오사카 전체 인구의 33만명 가운데 남녀하인들의 비중이 거의 24%에 달했으며, 호상들이 사는 지역에는 하인들의 비중이 훨씬 더 높았다.
18세기 들어, 이러한 호상들은 나름대로 경영방식을 확립하는 한편 서서히 호코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제도 즉 호코닌 제도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호코닌 제도의 골격은, 주인을 그 상점의 정점으로 하여, 그 아래에 충성을 맹세하는 호코닌을 거느린다. 호코닌은 그 성실성과 노력 여하에 따라 승진과 급여가 결정되며, 나아가서는 분점을 차려 독립된 점포를 가지도록 하는 상인세계의 질서체계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소네자키신주의 주인공인 도쿠베(德兵衛)도 이와 같은 호코닌 제도에 따라서 간장상점에 근무하고 있는 점원으로 등장한다.
호코닌은 고용된 이후로 여러 단계의 직위를 거치게 된다. 대개는 10살 전후의 어린 나이에 상점에 들어가서 호코닌 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따로 급료를 받지는 않고 의식주만 제공받는다. 우선 잡다한 허드렛일을 하며 일을 배우는데, 이를 뎃치(丁稚)라고 한다. 뎃치에서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일을 익히고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데다이(手代)로 승진한다.
데다이가 되면 비로소 한사람의 점원으로 취급되어, 의식주 이외에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다. 처음엔 뎃치와 같은 잡일을 하지만, 상급자의 지도에 따라, 출납, 기장, 판매 등의 임무를 담당하며, 때때로 독자적으로 흥정하기도 한다. 데다이의 연령은 대개 17·8세에서부터 27·8세 정도였지만, 영업의 종류, 본인의 능력 등에 따라 그 기간이 단축되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한다. 이 연령대는 한창 때의 청년기이기 때문에 이성과의 교제도 활발하고, 배필을 정하여 결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네자키신주의 주인공 도쿠베는 바로 이 시기의 데다이였다.
데다이를 거치면 지배인에 해당되는 관리자 역할인 반토(番頭)로 승진한다. 반토는 주인을 대신하여 하급점원을 관리 지도하며 영업에 관련된 일체의 업무를 대행한다. 에도시대에 규모가 큰 대형 상점에서는 영업이 발전함에 따라 각지에 분점이나 지점을 두었는데 충실히 일한 반토에게 분점이나 지점을 차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반토가 주인이 후원해주는 분점이나 지점을 차리는 일을 노렌와케(暖簾分け)라 한다.
점원들은 장래 분점을 차리고 독립하는 노렌와케가 가장 큰 소원이자, 생활의 목표였다. 데다이 기간 중에 열심히 일하여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승진하고 그 이후도 보장되기 때문에 평소부터 신용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되었고, 특히 금전관계를 투명하게 처리해야 상인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네자키신주의 주인공 도쿠베도 사건이 발생되기 전까지는 신용있는 점원으로 좋은 장래가 보장된 상태였다. 그러나 일단 금전문제에서 신용을 잃게 되어 다시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의 치명적인 평가를 받아, 그 지역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만큼 금전면에 있어서의 신용이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사회였던 것이다.
2. 당시의 기녀제도
소네자키신주의 여주인공 오하쓰는 유곽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기녀였다. 기녀를 당시에는 즉 유조(遊女)라 했다. 유조들은 아무 곳에서나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막부가 지정해놓은 일정한 구역 안에 있는 유곽에서 손님을 맞아야 했다. 일단 유곽에 적을 두고 유조가 되면, 일생동안 마음대로 유곽을 떠날 수 없다. 유조는 유곽 안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여 상대하지만, 특별한 허락 없이는 유곽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얽매인 신분이었다.
혹시 어떤 남자가 유조를 좋아하여, 아내로 삼거나 후처로 삼고 싶어 유곽에서 빼내오고 싶은 경우에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비용을 치르고 유조를 빼내는 일을 미우케(身請け)라고 한다. 즉 근무계약기간 중에 있는 기녀를 대금을 지불하고 기적(妓籍)에서 빼내어 데려가는 일을 의미한다. 원래 유조는 인신매매적인 고용계약을 맺고 유곽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계약을 해제하려면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인기있는 재주꾼이라던가 미인인 경우, 미우케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소네자키신주의 여주인공 유조 오하쓰는 유곽에 얽매인 부자유스러운 몸이었지만, 도쿠베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오하쓰를 사랑하는 남자 도쿠베에게는 오하쓰를 기적에서 빼낼 수 있을 만한 돈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점이 두 사람 사이에 원만한 사랑을 나눌 수 없는 한계이자 비극의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제3장 『소네자키신주』에서의 사랑의 문제
소네자키신주의 주인공 남녀는 한창 때의 젊은이들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 남자 주인공인 호코닌 도쿠베는 상점에서 데다이의 신분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상점 주인에게도 신용을 얻어, 점원으로서의 출세를 보장받고 있었다. 주인은 도쿠베의 성실함을 보고, 마음에 들어 어떻게 하든지 자기 상점을 떠나지 말고 오랫동안 일하도록 당부했다. 말로만 당부했을 뿐 아니라, 자기 조카딸을 도쿠베에게 짝지워주고 나중에는 자기 상점도 도쿠베에게 넘겨주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도쿠베를 신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쿠베에게는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같은 오사카 시내의 유곽인 덴마야에 소속된 유조 오하쓰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다. 보통 젊어서 한동안 유조와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이 그 당시의 풍조였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남달리 뜨거웠다. 작품 가운데는 틈만 나면 서로 안부를 전하고, 틈을 내어 만나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곤 했다는 내용이 연연히 전개되고 있다. 어쩌다가 만나면 서로 부둥켜안고 정을 나누며 때로는 원망도 하고 푸념도 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모습은 마치 사이좋은 부부와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출발하였다. 점원 데다이의 신분이나 경제력으로 유조를 기적에서 빼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데다이의 수입으로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너무나 큰 액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뿐만 아니라 도쿠베가 믿고 있던 친구 구헤지는, 도쿠베를 배반하고 도쿠베를 파멸시켜버리고 말았다. 도쿠베는 사회적으로 신용불량자로 못박히고, 두 남녀가 자연스럽게 맺어질 수도 없게 되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대로 멀리 도망가버리든지 죽는 길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적을 두고 살던 지역에서 멀리 달아난다고 해도, 따로 정착해서 살 곳이 없었다. 당시 사회는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는 사회였다. 지금 같으면 남모르는 곳이라 해도, 머물러 살면서 일하며 돈을 벌고, 돈을 가지고 가서 땅이나 집을 사서 살 수 있는 주거이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던 시대였고, 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밑천도 없었다.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하여, 이승에서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는 방법,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1. 신주라는 죽음의 방식
당시 18세기 초기에는 일종의 사회적 유행처럼,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일이 많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한날한시에 함께 죽는 일을 신주(心中)라 한다. 신주라는 말은 「마음의 한 가운데」 즉 「진심」이라는 뜻이었으나, 「남녀의 진심이 통하여 함께 목숨을 끊는다」는 뜻으로 의미가 변화되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신주란 당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일, 멋진 일이며, 사람이란 어차피 한번은 죽을텐데 신주야말로 멋지게 죽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물론 이 이전에도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사건은 있었지만, 신주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라는 것이다.
역사 기록 가운데 나타난 신주의 유래는 712년에 쓰인 『고사기(古事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매 사이였던 가루노미코(輕王)와 가루노오오이라쓰메(輕太郞女)가 이성간의 사랑을 느꼈으나, 그들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정사했다는 이야기는 고대의 신주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때는 직접 신주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다.
헤이안시대의 정사의 예는 이쿠타가와(生田川)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근대에 소설가인 모리 오가이(森鷗外)가 희곡작품으로 재구성하여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고대소설 가운데는 정사의 예가 많이 있다.
특히 에도시대에는 많은 신주 사건이 일어나서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화젯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에도시대의 남녀 정사 제1호는 1683년에 오사카의 이쿠타마(生玉)에서 일어난 유조와 염색 상점 점원과의 신주사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후 신주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는데, 극작가들이 이때마다 작품화하여 닌교조루리나 가부키로 상연하였고, 많은 관객을 동원하였다. 에도시대의 신주는 특히 상가의 고용인 즉 호코닌과 유곽의 유조 사이에서 그 예가 많이 남아있다. 신주의 발생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격렬한 연애 감정이 가장 많았고, 그밖에 가족제도, 의리, 경제적 빈곤, 명예심 등을 들 수가 있다. 이 무렵 약50년 동안은 신주사건의 빈도수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1704년에 간행된 신주 사례를 집대성한 책인 『신주오오카가미(心中大鑑)』의 기록에 의하면 약2년 사이에 36건의 신주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렇듯 신주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자주 일어나고, 신주를 미화하는 경향이 만연되자, 급기야 1773년 막부에서는 「신주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간주하고 법령을 발표하여 신주를 금지했다. 동시에 신주를 소재로 하는 소설 작품의 출판과 연극으로 각색하는 일을 금지했으며, 출판물에 신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신주라는 용어에는 정사를 아름다운 일로 여기게 하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주라는 용어의 사용을 금지하였던 것이다. 신주라는 용어 대신에 상대방과 함께 죽는다는 뜻으로 아이타이지니(相對死)라는 공식용어를 만들어 신주를 범법행위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신주를 범법행위로 간주하고 신주를 시도한 사람에게 형벌을 가했다. 신주한 사람들의 시체는 가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산이나 들에 버려서 들짐승이나 새들의 밥이 되도록 했다. 죽은 남녀의 옷가지들은 그 시체가 들짐승들의 밥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파수꾼이 재량껏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것 또한 금지시켰다. 이러한 규정을 어긴 사람은 엄벌에 처했다. 사실 이렇게 되고 보면 신주는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처참한 죽음, 부끄러운 죽음이라는 측면으로 인식되도록 여론을 유도했던 것이다.
만약 신주를 시도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그 사람을 남의 하인으로 삼거나 천한 노비 취급을 했다. 신주가 미수에 그쳐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난 경우에도 두 사람 모두 천한 노비로 강등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신주 금지 법령으로 인하여 신주를 미화시킨 작품들이 서민생활에서 멀어지게 되자 실제 신주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것은 신주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실제의 신주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시는 특별히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오늘날의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가 없던 시기이기 때문에 신주를 다룬 소설이나 연극은 당시 사람들의 중요한 소식통이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소식들을 접한 일반대중들은 오늘날 시청자들이 뉴스 모방 범죄를 하는 것과 같이 신주를 모방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상에서 사회현상으로서의 신주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은 일본인들이 신주라는 죽음의 방식에 대하여 그 어떤 심미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1988년에 한국판 영화가 제작되어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소설이자 영화 작품 『실락원(失樂園)』에도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남녀 주인공이 이승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을 위하여 신주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있다. 에도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전해져오는 신주를 일본인들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념, 혹은 신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소네자키신주의 남녀 주인공은 신주를 통하여, 현실을 도피하며, 사랑을 승화시키던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닌교조루리 소네자키신주를 감상하며 그들의 사랑과 현실생활 속에서의 좌절, 신주로 가는 과정, 신주의 방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소네자키신주 - 그 사랑과 죽음
겐로쿠(元祿 1688-1704)시대에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유행병처럼 많은 신주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러한 때마다 분라쿠로 작품화되어 화제를 모으곤 했다.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이루기 위하여 남녀가 함께 자살하는 일은 동서고금에 있는 일이지만, 근세 일본의 신주는 매우 극적인 요소를 띠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이 주위의 장애 요소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신주. 신주가 멋있는 일, 용기 있는 일로 여겨지던 풍조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실제 일어났던 정사 사건을 소재로 한 분라쿠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703년에 초연된 「소네자키신주」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최초의 본격 신주 분라쿠이자 성공한 분라쿠로 일본연극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다.
소네자키는 현재도 유명한 오사카 시내의 지명으로 소네자키의 중심부는 에도시대부터 환락가의 하나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다. 소네자키의 변두리에는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소네자키 신사(神社)가 자리잡고 있다. 소네자키 신사는 소네자키신주의 무대로서도 유명하여 오늘날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소네자키신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무대는 상업도시인 오사카의 시내이며, 주인공은 간장 상점 히라노야(平野屋)의 데다이 점원 도쿠베와, 유곽 덴마야(天滿屋) 유조인 오하쓰(お初)이다.
도쿠베와 오하쓰는 이미 장래를 굳게 약속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일하는 중에도 틈틈이 짬을 내어 남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곤 했다.
도쿠베의 주인은 도쿠베의 부지런하고 사람됨이 마음에 들어서 도쿠베의 계모에게 돈 2관을 선금으로 미리 주어, 언제까지나 자기 상점에 묶어 두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은 그 돈을 자신의 처조카의 지참금으로 삼아, 처조카와 도쿠베를 결혼시키고자 했다. 언젠가는 도쿠베에게 상점도 물려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날 주인은 도쿠베에게 처조카와 결혼하라고 권했으나, 이미 사랑하는 오하쓰를 아내로 삼기로 결심한 도쿠베는 혼담을 거절해버렸다. 더구나 돈 2관에 팔려 일생 동안 처가살이로 비굴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쿠베의 거절에 분개한 주인은 선금으로 보냈던 돈을 당장 되돌려 달라고 했다. 도쿠베는 선금을 받아두었던 계모에게 돈을 찾으러 갔다. 쉽게 내어놓지 않는 계모를 달래고 얼러서, 마감일에 7일 앞서 돈을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도쿠베가 오하쓰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오하쓰는 어차피 돌려주어야 할 돈이니까 서둘러서 갚아버리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때 마침 기름 상점의 점원이자 친구인 구헤지(九平次)를 만났는데,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3일 동안만 빌려달라고 간청했다. 이는 도쿠베와 오하쓰의 비극이 한걸음더 성큼 다가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도쿠베는 친구 구헤지도 남자이니까 의리를 지키리라고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되고, 하루가 지났건만 구헤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급해진 도쿠베는 구헤지를 찾아 나섰다. 마침 오하쓰와 함께 도쿠베가 만난 구헤지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에 취해 있었는데, 돈을 갚아달라는 말에 시침을 딱 떼었다. 나는 돈을 빌린 일이 없다면서, 오히려 성을 내었다. 나는 자네와 수년간 사귀었지만, 지금까지 돈이란 한푼도 빌린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도쿠베는 어처구니 없어하며 구헤지의 도장이 찍힌 차용증서를 내밀어 보여주었으나, 구헤지는 적반하장이었다. 여기 찍힌 이 도장은 내가 잃어버렸던 도장인데, 도쿠베가 도장을 훔쳐서 마음대로 차용증서를 위조했다며 차용증서를 빼앗아버렸다. 뿐만 아니라 구헤지와 친구들이 달려들어 도쿠베에게 뭇매를 가하기 시작했다. 오하쓰는 안타까워하며 싸움을 말리려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싸움에 말려들면 위험하다면서 유곽의 주인은 가마를 보내서 오하쓰를 데리고 가버려 도쿠베는 고군분투했지만 매만 실컷 맞고 죽을 지경이 되었다.
뭇매질을 하던 구헤지의 친구들은 도망가버렸고 한참 뒤에 겨우 정신을 차린 도쿠베는 간신히 몸을 가누며 오하쓰가 있는 유곽 덴마야를 찾아갔다. 한편 오하쓰는 도쿠베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만나는 유곽의 손님마다 도쿠베는 나쁜 놈이라는 억울한 소식만 전하였기 때문이다.
도쿠베는 삿갓으로 얼굴을 감추고 덴마야에 당도했으나, 그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덴마야 안에 있다가 문밖에 비틀거리며 서있는 도쿠베를 알아본 오하쓰는 슬그머니 나가서 도쿠베를 만나 도쿠베의 삿갓 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하쓰는 당신에게 무슨 변이라도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 미쳐버릴 지경이에요라고 소리를 죽여 울먹였다. 도쿠베도 남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 해도 자신은 결백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방법이 없고, 이대로 당신과 헤어질 수도 없다고 했다.
덴마야 안에서부터 오하쓰에게 빨리 들어오라는 재촉 소리가 들렸다. 오하쓰는 도쿠베에게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마루 밑에 숨어 있으라고 했다.
오하쓰는 감정을 억누르며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였고, 도쿠베는 바로 그 마루 밑에 몸을 숨겼다. 오하쓰와 도쿠베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손님들은 도쿠베가 나쁜 놈이라며 떠들어대었지만, 오하쓰는 참고 내색하지 않고 손님들을 응대했다. 마루 밑의 도쿠베는 마루에 걸터앉아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오하쓰의 발에 손님들 모르게 얼굴을 비볐다.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도쿠베가 오하쓰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비극적인 장면으로 이 분라쿠의 중요한 장면이다.
마루 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 오하쓰에게 흥이 나서 이야기를 걸고 있는 유곽의 손님들, 얻어맞아 흉한 몰골이 된 채 마루 밑에 숨어 있는 도쿠베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인 극적 상황이다. 또한 이런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오하쓰의 모습은 극중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긴장된 상황은 오히려 두 사람에게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게 하며, 함께 죽음의 길을 택하자는 의지를 굳히게 된다.
밤이 깊어 손님들도 돌아가고 사방이 조용해지자, 두 사람은 유곽을 몰래 빠져 나와 죽음의 길로 달려갔다. 이때 도쿠베의 나이는 25세, 오하쓰는 19세였다.
두 사람은 함께 소네자키신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부모님들과 섬기던 주인과 친구들에게 작별하지도 못하고 먼저 저승으로 가는 안타까움도 이야기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사는 아름다운 글로 유명한 문장이다.
이처럼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특히 미치유키(道行)이라고 한다. 미치유키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고조시키면서 지나간 일을 되새긴다는 장면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그 작품의 중심주제를 확인하는 장면이 된다. 작가는 미치유키 장면을 특별히 아름다운 필치로 써냄으로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독자나 관객은 구어체로 쓰여지는 미치유키 대사에서 감동을 고조시켜 작품 전체의 인상을 결정짓게 된다.
이른 새벽녘, 바람으로 쌀쌀한 소네자키 신사의 숲에 당도한 두 사람은 저승에서는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죽을 자리를 찾았다. 그러다가 숲 속에 소나무와 종려나무가 엉키어 자란 나무 그늘 아래가 자신들의 죽음과 가장 어울리는 자리라고 생각하다. 신주할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이제는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는 뜻으로 몸을 함께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도쿠베는 칼을 뽑아 오하쓰의 목을 찔렀다. 칼끝은 여러 차례 빗나갔다.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을 확인하며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승에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이윽고 도쿠베의 칼이 오하쓰의 목에 깊숙히 박히자, 오하쓰는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도쿠베는 오하쓰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바로 뒤를 이어 자신의 목을 찔렀다.
이 절정 장면에 인형조종자들은 심혈을 기울여서 연기하며, 기다유들의 노래는 긴장감 속에 고조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두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 소리조차 멎고 주위는 조용해진다.
기다유들이 에필로그로 부르는 노랫말에 「이 남녀의 이야기는 틀림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리라」는 구절과 함께 분라쿠 소네자키신주는 막을 내린다.
분라쿠 작품 소네자키신주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 작품의 이해를 통해서 일본전통문화의 여러 가지 측면을 읽어낼 수 있다.
당시의 사회체제 가운데 상인들의 세계, 유곽의 제도 등의 측면은 물론 당시 일본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방식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런 노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죽음의 길을 택하던 사례 등 하나의 인형극 작품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제4장 허실피막론이라는 극작이론
소네자키신주라는 작품은 당시 분라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히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많은 관객을 사로잡아, 당시의 대중이 분라쿠에 심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뛰어난 작품성 때문이었다.
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작품 즉 대본을 쓸 때, 극작 원칙으로서 「허실피막론(虛實皮膜論)」이라는 극작기술을 구사해서 작품을 썼다. 이 허실피막론이라는 이론을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예술 작품이란 사실과 허구의 사이 즉 실과 허가 피막과 같이 공존하면서도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주장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주장을 잘 정리하여 극작술에 활용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지카마쓰의 허실피막론은 1738에 간행된 분라쿠 해설서인 『나니와미야게(難波土産)』에 기록되어 있다. 나니와라는 말은 오사카의 중심지에 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유흥가의 지명으로 극장가라는 뜻이 있다. 미야게라는 말은 특정 지역에서 여행자들에게 파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니와미야게라는 책의 제목은 오사카 극장가에 가면 얻어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니와미야게에는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분라쿠 작품을 소개하며 비평하는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책의 가치는 발단부에 적혀 있는 지카마쓰의 작품에 관한 비평부분이다.
「예술이란 실과 허의 피막사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허라 해도 완전히 가공적인 이야기라는 뜻의 허가 아니며, 실이라 해도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뜻의 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분라쿠 작품에서 혼이 없는 인형에 혼을 불어넣으려면, 정감이 담뿍 배인 대사를 써야 하며, 개개 등장인물에 잘 어울리는 대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의 내면세계 즉 저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디포메이션(deformation), 즉 변형 소재나 대상을 작자의 주관에 의해서 비꼬기도 하고 과장하기도 한다. 분라쿠의 핵심이 되는 감정적인 특징을 비극적인 슬픔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우레이(憂い??愁い)라 한다. 우레이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여, 등장인물이 그저 울기나 하고, 대사에 그저 슬프다 슬프다라는 설명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사나 지문에서 슬프다는 감정묘사를 배제하고 「예술의 요소를 진지하고 정연하게 전개하여야 관객이 크게 감동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극 전개에 감정을 구차하게 설명하려 하지말고 극의 내적인 필연성을 지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정감이 배어드는 극을 전개하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대로 나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는 없는 허 즉 허구가 끼여들지 않으면 예술이 되지 않다. 이 부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혹은 틀림없는 허구다라고 단정할 수 없는 사실과 허구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미묘한 표현을 쓸 때에 비로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허이면서도 완전한 허구가 아니며, 실이면서도 완전한 사실이 아니라, 허와 실 사이에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극으로 보는 즐거움」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지카미쓰는 극작가로서의 오랜 경험을 통하여 이런 방법론을 터득하였고, 이를 만년에 주위 사람들에게 정리하여 이야기했던 것이다. 일본연극사에서 중요한 연극이론이자 분라쿠의 극작술로 높이 평가되는 이 허실피막론은 중국 한시(漢詩)의 시론(詩論)에서 말하는 자연의 현상을 가리키는 「경(景)」을 「실(實)」로 대응시키고, 인간 내부의 감정를 가리키는 「정(情)」을 「허(虛)」로 대응시켜 전개하였던 것이다.
지카마쓰의 허실피막론은 그의 분라쿠 극작법의 바탕을 이루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쓰여졌다.
제5장 총정리
분라쿠는 그 주제와 전개방식에 따라서 지다이모노, 세와모노, 무용극 등으로 분류된다.
본 강의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 가운데서도 서민들의 애환을 다루는 세와모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세와모노는 근세 서민사회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에, 근세 서민 즉 조닌들이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처하며 신분적인 한계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세와모노의 다양한 내용 가운데서도 인간 삶의 기본적인 테마인 사랑과 죽음의 문제는 연극, 특히 분라쿠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흥미진진한 테마이다.
분라쿠의 대표적인 작품인 소네자키신주는 오래 전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연극이지만, 뜨거운 사랑과 사랑의 한계를 죽음으로 극복하려던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감동을 주는 바가 있다. 지카마쓰 몬자에몬의 소네자키신주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사랑과 죽음의 문제 또한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당시의 사화적 배경 등을 통하여 근세 일본문화의 특징의 일면을 아울러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근세 분라쿠의 중요한 테마가 되던 동반정사의 문제, 즉 신주를 미화시켜 바라보던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은 작품성립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또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이런 사랑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때는 저승에서나마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신주라는 방식을 택하였다는 점은 흥미의 초점이 된다.
사랑 죽음의 문제를 다룬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지카마쓰 몬자에몬이 극본을 쓴 소네자키신주는 일본연극사와 문학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그 주제는 현대인의 공감을 얻어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분라쿠의 극작과정에 극작술로써 허실피막론이라는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분라쿠의 연극적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도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