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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고삐리의 꼴림에 대하여 (published version)

Ozu 2013. 7. 22. 19:45

[영진공] 고삐리의 꼴림에 대하여(published version)

http://www.ddanzi.com/ddanziilbo/movie/2115/mo2114et_901.asp



- 2002년 11월 25일 딴지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딴지일보에 실린 두번째 기사지요.
역시 원고료는 못받았지만 제 기사 읽은 사람들로부터 나름대로 반응이 있어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최종 수정이 반영이 안되어, 딴지 일보에 실린 기사와는 조금 다른 내용입니다.
original version은 A4 11장 짜리였는데 실제로 딴지일보에 실린 기사는 6장 정도로 대폭 줄였습니다.-


  "죽어도좋아" 가 일반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니들은 좋겠다. 빠굴기술을 수십년 연마한 절륜한 테크니션들의 현란한 몸사위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영환 꼭 챙겨보고 실전에 응용하는 것이 궁극의 빠굴지락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후학된 도리라 하겠다. 물론 "죽어도좋아"가 이 땅의 빠굴사에 남긴 크나큰 좆적은 리얼 시츄에이션으로 장인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교육적 효과 이상이다. 빠굴을 해도 되는 연령을 정해놓고 그 이외의 빠굴은 온갖 호들갑 떨며 변태화시키던 우리 사회의 완고한 "연령주의/생식주의적 빠굴관"이, 저 늙은 연인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앞에서 실로 산산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빠굴라이프는 족히 20년은 연장되었다!

내친 김에 좀 더 가보자. 짧디 짧은 우리네 인생에 빠굴가능연령이 늘어난다면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 마리 천사에 다름아니던 초,중고 시절이 무리라면, 고삐리 시절은 어떨가? 온갖 야리꾸리한 상상이 쉴새없이 머릿속을 휘젓고 밤마다 해소할 길 없는 불끈거림에 괴로워하던 그 시절의 설익은 꼴림도 허락한다면, 우리의 빠굴라이프는 3년 더 연장될 수 있다. 하지만 고삐리들의 꼴림에 대해 얘기를 꺼내기란 노인의 경우보다 더 힘들다. 노인네들의 꼴림에 대해 말하는 것이 단지 '체면'에 관한 문제라면, (특히 여)고삐리의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개인의 '성도덕'이나 '사회윤리'에 관한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중년 남자가 "여고생에게도 맘껏 꼴릴 자유를 달라"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를 제정신으로 볼 것인가? 하지만 ‘최대다수의 최대꼴림’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본 우원, 사회적으로 생매장될 위험을 감수하며 고삐리의 꼴림에 관해 함 디벼보기로 했다. 영화속에 나타난 고삐리의 꼴림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반영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우끼고 자빠진 빠굴관에 대해서.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를 첨 봤을 때, 본 우원은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스무살, 섹스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라고? 그러니까 이 땅의 묘령의 아낙네들이 빠굴도 궁금했더란 말이냐? 본 우원 두뇌 속의 정교한 데이터베이스 안에는 빠굴을 궁금해하는 스무 살 안팍의 여성이 등장하는 '현실감있는'한국 영화가 거의 없다.(에로영화가 묘사하는 꼴림의 판타지는 논외로 하자.) 특히 여고삐리들은 식물처럼 무성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간혹 빠굴하는 여삐리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은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반사회적 인간이거나(“나쁜영화”“눈물”),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청춘”), 그것도 아니면 조만간 귀신이 될 운명인(“폰”“여고괴담2”) 캐릭터들이다. 비교적 정상적인 여고삐리가 원조교제를 하는 “버스,정류장”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희는 빠굴 자체를 경멸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원조교제를 시작한 동기도 삶에 대한 환멸이지 꼴림 그 자체 때문은 아니다. 요약하면 한국 영화에선 정상적인 여고삐리라면 빠굴을 경멸하고 빠굴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영화밖 현실도 정녕 이러하다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이렇게 건전한 성관념을 가진 예비신부들이 즐비하니, 이 땅의 숫컷들은 적자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할 가능성을 확보한 뿌듯함을 가슴에 품은 채, 초야에 시트를 물들인 혈흔을 찾을 일만 남은 게 아니겠는가!



빠굴과 정상적인 여고딩을 함께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금기는, 한국 영화의 다른 두 가지 경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우선, 식물의 성욕을 갖고 있는 여고삐리와 달리 달리 조선 땅의 남고삐리들은 짐승의 성욕을 갖고 있다. 최근 극장 개봉한 “몽정기”에 잘 나타나듯이, 남자 등장인물의 중,고딩 시절을 묘사하는 장면에는 으레 옆집 누나, 뒷집 과부, 학교 교생, 어릴적 고향여자친구, 홍등가 미쓰리에 얽힌 성적 경험담이 당연하다는 듯이 삽입된다. 운이 좋아 실제 관계를 갖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영화 속의 남고삐리들이 적극적인 성욕을 갖고 있으며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 그 환락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빠굴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안전한 세상에 사는 여고삐리들과는 달리, 한국 영화의 성인 여성들은 가혹한 성적 폭력에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엔 폭력과 함께 시작된 강간이 결국엔 화간으로 발전한다는 에로영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감동적인' 영화들도 호평 속에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나쁜남자”“오아시스”)



이렇듯 영화속 한국은 빳빳해진 조슬 휘두르며 설쳐대는 남고삐리들과 빠굴이 뭐에여 천사같은 표정을 짓는 여고삐리들이 공존하는 희한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외국 고삐리들의 빠굴라이프는 어떠할까? 내친김에 이것도 함 디벼보기로 하자.



남고삐리의 빠굴이 등장하는 외국 영화는 부지기수다. “아메리칸파이”같은 미제 10대 섹스코미디를 귀두로 하여, 20대 유부녀와 두 명의 고삐리들이 트리플 빠굴을 선보이는 “이 투 마마”같은 멕시코 영화까지,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발정지랄생쑈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별다른 죄책감이나 순결의식 없이 빠굴하는 건 여고삐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크림”의 히로인 시드니는 성적으로 문란한 10대를 난도질로 처단하던 이전 시대 슬래셔 무비의 관습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남자친구와 빠굴하지만 결국 완결편까지 무사히 살아남는다. “트레인스포팅”에선 14살 먹은 다이앤이 부모의 묵인하에 능숙한 테크닉으로 마크와 한 빠굴하고, 오르가즘을 느껴보는 것이 소원인 “걸스 온 탑”의 17살 세 여고삐리들은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위해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제이미 배빗 감독의 발랄한 레즈비언 영화 “하지만 난 치어리더에요”에서 그래험의 촉촉한 입술을 떠올리며 자위를 하던 고교 치어리더 미건은 결국 그녀와 감미로운 성관계를 맺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빠굴 여고삐리로는 우디 알렌의 “맨하탄”에 나오는 트레이시가 있다. 42살 먹은 아이삭과 한 침대에 누워 "오늘은 당신이 원하던 그 이상한 체위로 해줄께요"같은 대사를 읊어대는 17세의 이 조숙한 여고삐리는, 아이삭의 중년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투정(!)부리는 아이삭에게 세상 다 산 것 같은 충고도 할만큼 어른스럽다.



물론 한국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빠굴하는 여고삐리를 악녀나 범죄자와 연관짓는 외국 영화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ꡒ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ꡓ이라는 살떨리는 리얼한 영화로 공포영화팬을 열광시켰던 존 맥노튼의 느와르 풍 영화 ꡒ와일드 씽ꡓ에는 돈을 위해 살인도 마다않는 여고삐리 켈리와 수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고비리로서 빠굴하는 것은 살인범에게나 있을수 있을만한 부도덕한 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이 선보이는 선생과의 트리플 빠굴은 선생을 그들의 복잡한 트릭에 말려들게 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팜므 파탈(위험한 여자)로서의 강렬한 성적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일 따름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된 방식은 여고삐리의 성욕을 바라보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잘 드러낸다. 이 영화의 켈리와 수지는 블루베이 "하이스쿨"의 학생들이다. 그런데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에는 이들을 여대생으로 묘사한다. 노인네들 빠굴도 용납못하는 인간들이 여고삐리의 트리플 빠굴을 용납할리 없지 않은가?)



요약하면 성욕이란 건 남고삐리와 일탈적인 여고삐리한테만 관계된 일이라고 묘사하는 한국 영화와 달리, 외국 영화에선 고삐리 정도면 남녀할 것없이 자신의 성욕을 자연스럽게 향유하며 그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똑같은 고삐린데 나라마다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단지 ‘문화적 차이’일 뿐이라고 애매모호하게 말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남고삐리들끼리는 바다를 건너서 공유되는 발기충천이 왜 여고삐리에게는 바다 저쪽에서만 나타나냔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여고삐리도 성욕을 갖고 있고 빠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며, 그것이 현실화될 경우 그 여고삐리를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신중절의 타이밍을 놓쳐 임신사실이 뽀록난 여고삐리를 자퇴나 전학의 형태로 학교 밖으로 내치는 것처럼 말이다.



여고삐리들의 성적(혹은 그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행위에 대해 남고삐리보다 더 강한 통제와 규율이 가해지는 경향은, 흔히 그녀들을 다양한 성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되고 그로인해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조치인 것처럼 보인다. 이에 반해 남고삐리들의 경우 위생상의 조언이나 학업상의 이유, 혹은 범죄 예방 차원의 제제가 아니라면 그들의 폭주하는 꼴림에 거의 아무런 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 매춘부와 관계하면 성병에 걸리기 쉽다, 지나치게 빠굴만 생각하면 공부하는데 방해된다, 남자는 세가지 ‘끝’을 조심하지 않으면 인생 조지기 쉽다며, 그들의 선생과 애비와 선배는 충고하지만, 고삐리 정도면 여물데 다 여물었기 때문에 그들의 꼴림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긴다. 한국에서 남고삐리와 여고삐리의 성욕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남고삐리인 당신이 오늘도 변함없이 뽀르노 싸이트를 돌아댕기며 수작업에 여념이 없는 걸 애비가 봤다고 치자. 말이 통하는 애비라면 적당히 하라는 충고와 함께 ꡐ우리 아들도 이젠 다 컸구나ꡑ 감동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말이 통하는 애미가 그 광경을 봤다면 일단은 문을 닫아주고 나중에 조용히 불러다가 ꡒ양말은 빨아놓은 걸로 사용해라ꡓ같은 위생에 관한 조언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만한 조선의 딸이 ꡒ섹스 아카데미ꡓ의 제이니처럼 ꡒ쉬즈 올 댓ꡓ을 보며 아침부터 바이브레이터를 돌려댄다면 애미애비가 퍽도 좋아하겠다. 그러고보면 한국 영화에 나타난 그 명백한 차이는 남고삐리/여고삐리의 꼴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허용 정도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남고삐리와 달리 한국의 정상적인 여고삐리는 정말 빠굴과 전혀 관련없이 사는 족속들일까? 영화는 현실속 여고삐리의 빠굴라이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니들도 대충 짐작하겠지만, 16~18세 여고삐리의 빠굴라이프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한국 영화 속 묘사는 순 개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0년 하반기에 전국 고교생 2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고삐리의 16.5%가 애무를, 8.1%가 빠굴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98년 청소년 보호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인문고 여고삐리 5.1%, 실업고 여고삐리 21.6%가 ꡐ자발적으로ꡑ 바꿀을 한 경험이 있으며, 97년에 대한가족협회에서 조사한 자료에는 여고삐리의 15.2%가 자위행위를, 7.5%가 (강요나 성폭력에 의한 것이 아닌) 빠굴을 해봤다고 나와 있다. 그 밖의 여러 통계치마다 정확한 수치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적게는 5.4%에서 많게는 10.2%에 이르는 여고삐리가 실제 빠굴의 경험이 있다고 밝혔으며, 니들도 동의하겠지만, 2002년도에는 이보다 더 많은 빠굴 여고삐리가 있으로 추측된다. 다시 말해, 한 반 인원을 4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반에 여덟 명 정도는 키쓰를 비롯한 다양한 애무를 시도해봤으며, 세 네 명 정도는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빠굴을 해 본 적이 있었다는 얘기다, 2~5년 전에 이미! 한편 같은 기간 남고삐리의 경우에는 13~17.7%가 빠굴경험이 있으며, 대한가족계획협회가 96,9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빠굴 경험이 있는 15~19세의 남자 청소년 중 44%가 매춘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남고삐리들이 여고삐리보다 7~8%정도 빠굴경험이 더 많긴 하지만 여고삐리들도 적지 않은 수가 빠굴 혹은 그 전초전의 경험이 있다.  



물론 영화가 통계적으로 엄밀하게 현실을 반영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본 우원이 한국 영화에 여고삐리의 빠굴라이뿌가 순 개뻥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지랄지랄하는 이유는, 한국 영화의 그런 경향이 남성과 여성의 꼴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가치관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ꡐ여성의 꼴림은 죄악이다. 숫컷의 꼴림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매춘은 필요악이다, 매춘부는 가부장적 폭력의 희생양이지만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ꡑ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이중잣대는 시대착오적인 망발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지난 9월 24일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범죄자 671명 중 16세 이상의 청소년을 성매매한 74명에 대해 ‘불경한’ 동정심이 생길 수도 있다.



(앞으로 할 얘기가 얘기니 만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몇가지 밝혀둘 것들이 있다. 본 우원이 앞으로 할 얘기는 강간, 성매매알선,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자들이 아니라 원조교제를 포함한 청소년 성매매자만을 다룬다. 그것도 16~18세에 해당하는 고삐리를 상대로한 성매매자말이다. 왜 하필 16~18세냐하면, 우선 그것은 고삐리들의 연령이고, 16세는 우리나라 외의 다른 나라들에서 일반적으로 의제강간 기준 연령-그 이하의 연령대의 미성년자와 빠굴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형사처벌되는 빠굴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있는 나이며, 18세는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에 의해 보호받는 최고연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들이 앞으로 읽을 본 우원의 글에서 청소년이나 미성년자라 함은 주로 16~18세의 고삐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쓸데없는 시비를 걸지 말기 바란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사실 ‘여자’청소년성보호법이다. 청소년성보호법에 근거를 두고 시행된 제3차 신상공개에는 17세 남자 청소년을 성매수한 30세의 아낙네가 포함되어 있긴하다. 하지만 그녀는 전체 성매수범 178명 중 유일한 여성이고 동시에 전체 671명 중 남자청소년을 법죄대상으로 삼은 유일한 케이스다. 앞서 살펴본대로, 남자빠굴청소년이 여자빠굴청소년보다 1.5~2배 정도 많은데도 전체 성범죄 대상자 비율은 오히려 여자청소년쪽이 670배나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남자청소년과 성인여성이 관계된 성범죄적 상황에서 남자청소년이 희생자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빠굴을 했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왕재수좋은 사건이지 인생 조뙨 사건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앞서 통계에 나타나듯이 빠굴 남자 청소년의 40% 이상은 그들이 직접 빠굴경험을 하기 위해 구매자로서 매춘여성을 찾아간다. 요컨대 청소년성보호법은 남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범죄도 동일한 처벌대상으로 규정ꡓ하고 있지만, 여자청소년의 경우와는 달리 빠굴상황에서 남자청소년이 희생자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여자’청소년성보호법이라는 얘기다.



어쨌거나 여자청소년이 성적 착취의 희생자인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므로, 사문화된 윤락행위방지법을 대신하여 ‘여자’청소년성보호법을 제정해야한다는 취지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청소년성보호법과 그에 근거한 성범죄자 신상공개라는 제도는 ‘여자청소년의 성은 여성 일반의 성보다 더 보호할 가치가 있고 남자청소년의 성보다 더 통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는 가치판단 하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앞서 ‘한국 영화에서 여고삐리의 빠굴이 묘사되는 방식이 한국영화의 다른 두 가지 경향과 대비된다’는 본 우원의 주장을 놀랍게도 현실속에서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까먹었을 니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한국 영화의 그 두 가지 경향이란, 첫째 정상적인 여고삐리는 빠굴에 관심이 없거나 빠굴을 혐오하는 반면, 남고삐리는 통제불가능한 빠굴의지를 갖고 있고, 둘째, 온실의 화초처럼 안전한 여고삐리들과 달리 성인 여성들은 가혹한 성적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청소년성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네 가지 방식의 매매춘 행위(미성년남:성인녀, 미성년남:미성년녀, 성인남:성인녀, 성인남:미성년녀)중 현실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인남:미성년녀의 경우 뿐이다. 즉 남자청소년의 (사는 행위로서의) 매매춘은 올웨이즈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성차별/연령차별적인 처벌방식이 타당하려면, 행위무능력자로서의 미성년자라는 연령적 고려 이외에, 남자청소년의 꼴림은 신체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고 이성적 판단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성인남자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성욕을 가진 여자청소년의 경우와 달리, 통제와 교화의 대상이 안된다는 가정까지 동의해야한다. 한국영화에서처럼 남자고삐리의 (사는 행위로서의)빠굴은 통제할 수도, 통제할 필요도 없는 무소불위의 본능적 행위지만, 여고삐리의 (파는 행위로서의)빠굴은 예외적인 탈선이기 때문에 통제/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청소년성보호법은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에 대한 법률이지 청소년이 성을 사는 행위에 관한 법률이 아니므로, 성을 사는 행위의 ‘주체’일 경우는 종종 있지만 성을 사는 행위의 ‘객체’가 될 일은 거의 없는 남자청소년은 애시당초 이 법률이 개입하려는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성보호법 제1조대로 “청소년을 보호,구제하여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면, 남자고삐리들이 성인 여성이나 여자청소년의 성을 사는 것은 그들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별 지장없는 사건이란 말인가? 물론이다! 대한민국같은 마초사회에서 불알 꽉찬 사내놈이 창녀 한 번 안사봤다면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한편 청소년성보호법과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는 성인 매춘여성을 애용하는 숫컷들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부여하는 희한한 결과를 초래한다. 실효성있는 성매매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자청소년 성보호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은 그들에게 강력한 변명거리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잖아?” 라며, 그동안 그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를 정치적, 도덕적 죄책감을 한방에 날려버린 매춘 빠굴남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결국 청소년성보호법은 성인 매춘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력에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들어준 것이고, 이 또한 한국 영화에서 여고삐리 이외의 여성들이 자주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향과 유사하다.



매춘행위를 성토하고 있는 듯한 주장을 계속 하고 있지만 사실 본 우원은 매춘을 포함한 상업적 섹스 서비스가 필요악이라고 보지 않는다. 섹스 서비스는 필요지 필요악이 아니란 말이다. 성적 쾌감과 정서적 만족감을 상업적 서비스로 얻을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하거나 그런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왜 나쁘단 말인가? 정말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세상은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들도 자신의 성욕에 당당하고, 지금의 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여성들도 자유롭게 섹스 서비스를 이용하며 그로부터 사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 결혼증명서나 혼인서약서를 지참한 자에 한해서 배란기에만 빠굴할 자격이 주어지는 그런 우끼는 세상이 아니란 말이다. "A.I"에서 주드 로가 연기했던 지골로 로봇처럼 여성 고객이 원하는 로맨틱 무드와 감미로운 섹스를 제공해주는 그런 서비스를 여성들도 죄책감이나 수치심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안그래?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능한' 세계일 뿐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1월 군산 개복동에서처럼 이중잠금키로 가둬놓은채 매춘행위를 강요하고 급기야 산채로 태워죽이기까지하는 이따위 야만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속에서 "섹스 산업은 필요악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의 정액 한 방울은 매춘여성의 피 한 양동이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씨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착취와 폭력 위에서 운영되는 매춘 산업에 당신이 돈을 뿌려댄다면, 그것은 범죄행위에 공범으로 가담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성인 여성에 대한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있고 이와는 달리 청소년 성매매만이 강력한 처벌의 대상이다. 결국 청소년 성매매는 성인 여성 성매매와도 비교가 안될만큼 더욱 파렴치한 범죄행위란 말인가?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청소년 매매춘의 대표적인 형태인 원조교제와 일반적인 매춘행위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윤락행위에 관한 법률상 정의를 볼 때, 원조교제도 명백한 매춘행위다. 하지만 원조교제는 일반적인 매매춘과 몇가지 중대한 차이를 보인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자청소년의 경우 직업적 매춘여성과 달리 상대를 선택할 수 있고 화대에 대한 교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포주에 의한 인신구속이나 폭행의 가능성도 없다. 거래에 이상이 있을 경우 상대적으로 성인 남자가 입는 사회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성인 남자와의 관계를 협상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원조교제를 하는 여자청소년이 직업적 매춘여성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기 힘들다. 한편 원조교제를 하는 여성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인에 비해 판단능력이나 사고능력,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한마디로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상대로 성매매를 했기 때문에 원조교제가 성인 매춘여성에 대한 성매매보다 더욱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발간한 연구 자료는 “십대 초반의 청소년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고능력, 이해능력, 그리고 판단능력들에서 확실히 성인에 비하여 열등하지만, 십대 중반 이후의 청소년들은 이 모든 요소들에서 성인수준의 성숙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시말해 10대 후반의 여고삐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아니며, 따라서 단지 18세 이하의 청소년을 성매매했기 때문에 성인 여성에 대한 성매매보다 더 파렴치한 행위라고 보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 9월에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공개한 671명의 청소년 성범죄자 명단에는 16~18세의 여자 청소년을 성매매한 73명의 성인 남자와 17세의 남자 청소년을 성매매한 1명의 성인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공개된 범죄사실만으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원조교제를 통해 이루어진 성매매일 것이다. 이들의 청소년 성매매 행위가 다른 파렴치범들과 같은 명단에 오를만큼 극악한 죄질을 갖고 있는 것일까? 예컨대 18세 청소년과 단 1회의 성매매를 한 서울의 신모씨가 9세 여아를 강간미수,살해,사체유기한 인천의 곽모씨와 동일한 명단에 오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어쨌든 청소년 성매매는 막아야하니까 명단공개는 불가피하다 치자. 그렇다면 16~18세 여자 청소년에 대한 평균 4회 미만의 성매매 행위가, 한국의 성인남자 상당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고 있는 성인 여성에 대한 매매춘보다 더 파렴치하고 극악한 죄라는 말인가? 성인 매춘 여성들은 산채로 불에 타죽든 말든 방관한 채 여고삐리들의 순결만 악착같이 보호해주면 된단 말인가? 왜, 그녀들은 단지 창녀일 뿐이까?



물론 청소년 성매매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행위다. 청소년 성매매의 상당수는 매춘지역에서 산업적인 매춘 행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성매매를 경험한 많은 청소년들은 신체적,정서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성보호법의 제정과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환영할만한 제도다. 그러나 명단에 포함된 성매매자들 중 몇몇은 한국 성인 남자, 심지어 일부 남자 청소년 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성인 여성을 상대로한 매매춘 행위들보다 더 나쁜 죄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저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지만 당신중 일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는 오입질도 충분히 저들의 행위만큼 나쁜 죄질일 수 있단 얘기다. 여고삐리의 성은 성인 여성의 성보다 더욱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남자의 성욕은 통제불가능하기 때문에 매춘행위는 필요악이라는, 이따위 헛소리가 통용되는 현실이 당신중 일부한테는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명단에 오른 74명의 입장에선 억울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법하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본 우원, "걸스 온 탑"처럼 꼴림에 온몸을 배배꼬는 여고삐리가 등장하는 한국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소박한 바램은 물론 본 우원의 롤리타 콤플렉스 때문이지만, 한편으론 그런 영화를 극장에서 범죄의식이나 죄책감없이 볼 수 있을만큼,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드물고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데 자유로운 그런 사회가 얼렁 왔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기도 하다. 어때, 너네들도 그런 영화 보고 싶지?






p.s. 본  우원이 참고한 자료들이 궁금하면 여길 눌러보시라.




1. 철학과현실, 10대의 성은 왜 '보호'의 대상인가?, 2002년, 가을호

2. 당대비평, 누가,어떻게 '성 매매'를 바라보는가?, 2002년, 봄호

3. 이성숙,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

4. 남미애,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연구, 2001

http://dju.ac.kr/~kwonhb/papers/selfdet.htm

5. 박광배, 아동,청소년의 성적 행위결정 능력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 청소년보호위원회, 2000 (청소년보호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youth.go.kr/ 자료실에 가면 다운 받을 수 있다.)

6. 김시업, 청소년의 '원조교제'와 '매춘'에 관한 심리학적 근거에 관한 연구, 청소년 보호위원회, 2000 (이것도...)

7. 국내 중고생 성의식과 성교육 실태 조사결과, 시사저널 200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