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リスマ 카리스마 ★★★★☆
カリスマ 카리스마 ★★★★☆
감 독 : 구로사와 키요시(黑澤淸)
tojapan
'특별한 나무 한 그루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숲 전체를 살릴 것인가?'라는 딜레마는 썩 익숙한 주제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파이더 맨> 같은 것들이 당장 생각나는군요. 사실 '잃어버린 양 한마리'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이해관계나 신념에 따라 '카리스마'라는 나무를 보호 혹은 파괴하려 하는 여러 집단들의 갈등을 묘사하는 이 영화의 전반부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정말 매력적인 건 카리스마라는 나무와 숲 그 자체이지요. 헐벗고 엉성한 가지로 힘겹게 뿌리내리고 있는 카리스마와 악에 받친 듯 독기를 뿜어내는 황량한 숲의 이미지는 이 영화 전반부에 불길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기요시 특유의 그 음산한 공간과 함께 말이죠. (어제 오후는 흐린 날씨에 황사까지 겹쳐 어두침침하고 음산했지요. 딱 기요시 영화같은 날씨였어요.^^)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후반부부터 시작됩니다. 마구 웃게 되는 버섯과 배우들의 뜬금없는 행동 때문에, 이 영화의 전/중반부는 다소 코미디같은 모양새입니다. 관객석에서도 종종 웃음이 터졌구요. 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저는 속으로 '조금만 기다려봐. 너희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가실 거야.' 벼르고(?) 있었습니다. 관객석에서 터져나오던 웃음은 그 '난데없는 바오밥나무(?)'가 마지막이었어요. 이 영화의 마지막 20여분은 설명할 수 없는 폭력과 사악함으로 가득차있어 절대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귀기(鬼氣)가 느껴진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요. '불가해', '부조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는 거의 항상 이 영화의 한 장면-노동자들이 관리자들의 머리를 모루에 올려놓고 큰 망치로 리드믹컬하게 내려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 장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거에요. 하지만 영화 후반부의 그 불길한 예감과 섞여, 그 장면은 강한 정서적 충격을 줍니다. 제가 본 수많은 영화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 중 하나에요.
불길에 타오르는 도시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세계는 멸망에 이르렀다,는 절망감이 압도하지요. 그러고보니 <회로>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한 정서를 자아내는군요.
여튼, 이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가장 뛰어난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렇게 불길하고 사악함이 느껴지는 영화는 스즈키 세이준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정도 뿐이지 않을까 싶어요. 멋진 영화입니다. (2004·03·11 13:31 )
아래는 영화제 팜플렛 소개글입니다.
TITLE (K) 카리스마
TITLE (E) Charisma
TITLE (O) カリスマ
DIRECTOR 구로사와 기요시 Kurosawa Kiyoshi
ADDITION 2000 | 35mm | 103min | 일본 | col
국회의원을 인질로 잡고 농성 중인 청년을 설득하려던 형사 야부이케는 ‘세계의 법칙을 회복하라’는 수수께끼 같은 쪽지를 받고 혼란에 빠진다. 잠시 망설이던 사이, 청년은 인질을 쏘고 자신도 자살한다. 이 사건으로 문책을 받은 야부이케는 무기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우연히 도착한 숲에서 그는 주위의 모든 나무를 독으로 물들이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하는데, ‘카리스마’란 이름의 이 나무를 둘러싸고 숲에서는 여러 입장들이 싸우고 있다. 나무와 숲 모두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야부이케는 이 숲의 투쟁 속에 들어가게 된다. 오컬트적인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이해불가능한 절대적인 타자의 힘을 형상화하고 있는 공포영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기묘한 나무를 통해 죽음과 삶이라는 두 힘의 충돌과, 공생과 공멸의 기묘한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