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kino의 1996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Scenographie(s) 1895-1996 >라는 꼭지에 Other Perspective라는 keyword로 Ozu와 미조구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폐간된 잡지사이기 때문에 문제삼는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라도 저작권이 문제될 경우 제게 알려주시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
Other Perspective
서방세계 영화가 딥 포커스, 쁠랑 세캉스, 고전적 편집체계를 완성하였던 1950년대에 일본영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깊이 없는 공간, 불연속적 편집체계를 완성하였다. Ozu와 미조구찌는 서구 중심의 시선을 해체하고, 일본의 전통과 근대화 사이에서 영화적 공간을 발명하였다. 이러한 일본영화의 이미지 공간은 인물의 형상과 시선이 원심적 틀(2차원의 평면구도)을 가진 18세기 일본풍속화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정중동의 연기를 펼치는 ‘노’연극의 단순성과 절제, 불교문화권의 無와 선(禪)의 초월의식을 결합하였다.
1950년대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과 존 포드, 스튜디오 시스템, 장르 영화가 고전영화 형식을 완성한 시기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Ozu와 미조구찌는 정반대의 영화형식을 발명했다. 미조구찌는 사극영화의 전통적인 건축구조 속에 들어가 높이와 낮이, 멀고 가까움, 종횡으로 연결된 수평과 수직의 동선, 건축구조의 겹을 따라 건물 안에 놓인 건물에로의 불연속성과 카메라의 동선을 서로 조화시켰다. 반면 Ozu는 근대화의 과정에 놓인 일본 가옥구조 속에서 일상생활의 예법과 가족 사이의 관계 사이에서 생rusk는 시선을 중심에 놓고 정지한 카메라의 위치와 거리, 편집체계와 인물배치를 만들어냈다.
미조구찌와 Ozu가 발견한 영화 속의 자족적인 소우주는 동양철학과 불교문화권 내부의 전통을 융해시킨 것이다. 두 감독은 카메라 수사학에서 몇가지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동일한 공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사방세계의 그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Ozu와 미조구찌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발명은 ‘내러티브 공간’에서 탈피한 ‘여백의 공간’에 대한 의미부여다. 서구의 영화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에서 출발해 입체구도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때 동양에선 오히려 평면구도 속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에 대한 사고를 이끌어냈다. 내러티브 공간은 과학적이며 측량 가능한 가시적인 공간이지만 사물화된 반면, 여백의 공간은 감정적이며 비가시적이지만 인격화된 공간이다. 여기서 동양의 초월적 無와 선(禪)의 사고가 프레임 속으로 스며들면서 전혀 다른 영화전통이 형성되었다.
서구영화의 공간은 애초부터 채워져있다는 패러다임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물의 중심에는 인간이 놓인다. 하지만 일본영화의 공간은 애초부터 비워져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긴다. 따라서 서방세계 영화 프레임의 원리는 ‘공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지만 일본영화 프레임의 원리는 ‘공간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이다. 이것은 일본영화에서 공간과 인물, 시선이 화면 외부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 자체를 지워버리고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일본영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온 데이빗 보드웰과 도날드 리치는 Ozu와 겐지의 독창적인 구도가 일본의 전통회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들이 내세운 가설 중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사고와 문화의식을 규정하는 문자의 차이다. 서구문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이런 관습은 운동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짓게 되는데 서구영화에서 공간분할의 기본선인 대각선 방향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를 향하고 이것은 운동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동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반면 일본영화의 대각선 구도는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 방향을 향하며 이것은 이미지-운동을 거스르면서 휴식과 침묵의 정적인 이미지-감정을 자아낸다.
Ozu와 미조구찌를 이해하는 열쇠는 이들의 선율적인 풍경(미조구찌)과 운율적인 인물(Ozu)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빛과 그림자에 대한 원리다. 서구의 영화가 ‘빛’과 기계장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면서 현실의 표면을 모사하거나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일본의 영화는 ‘그림자’와 내면풍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이면에 숨은 내재적인 본질을 더욱 주목하였다. 채워넣기와 비워내기의 긴장을 조율하는 미조구찌의 ‘여백의 공간’과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Ozu의 ‘여백의 쇼트’는 이런 민족적 원형의식의 소산이다.
Ozu보다 먼저 서방세계에 발견된 미조구찌는 서구영화의 하이 앵글이 만들어내는 신(神)의 시선 대신 크레인 쇼트를 통해 공간을 조감하면서 건축에서 출발한 컨셉트로 닫힌 프레임의 설계적인 미학을 구사했다. 수평구도 속에 병풍이나 나무 등을 이용한 수직구도를 설정하여 운동성을 부여하고, 의도적으로 배치한 여백의 공간을 통해 프레임 내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감추어진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구상 속의 추상이라는 선(禪)의 경지를 이끌어냈다. 반면 잡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가족이야기를 일관했던 Ozu는 서구영화의 로우 앵글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릎 꿇은 앉은 높이의 수평적인 다다미 쇼트로 보다 엄격한 양식화를 꾀하면서 시선의 여백이라는 전대미문의 영화언어를 창조했다. 한 프레임 안에서 쇼트-반응 쇼트를 동시에 해결하는 그의 독창적인 양식은 단조로운 수평구도와 깊이를 무시한 딥 포커스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시선의 엇갈림과 물질과 물질의 여백에 주어진 정서와 감정을 이용한 풍부한 심리적 뉘앙스의 공간으로 포면의 경계를 확장시켰다. 이러한 발명은 이후 아시아 영화를 자극하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적 인식이 되었다. 80년대 대만영화와 중국 5세대 영화는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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